여주 흔암리·부여 송국리 — 청동기 벼농사와 마을의 증거

청동기시대 · 기원전 700년 · 충남 부여 송국리 · 경기 여주 흔암리

경기 여주 흔암리와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는 불에 타 남은 볍씨(탄화미)가 함께 발견돼, 청동기시대에 밭농사 중심이던 잡곡 농경에 더해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물증으로 꼽힌다. 특히 송국리 유적은 둥근 바닥의 독특한 움집(송국리식 주거지)과 대규모 마을 배치가 확인돼 \"송국리형 문화\"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청동기시대 취락 연구의 기준점이 됐다. 이 시기 마을은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둔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았고, 인구가 늘고 정착이 안정되면서 다른 집단의 침입에 대비해 마을 둘레에 목책을 두르거나 도랑(환호)을 파는 방어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벼농사로 늘어난 잉여 생산물은 개인 간 빈부 차이와 계급 분화로 이어져, 고인돌로 상징되는 지배층의 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토대가 됐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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