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지대 — 고조선·부여·고구려, 어느 쪽도 아니었기에 강했다

-300 · 요동

지도를 크게 펼치면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묘한 자리에 놓여 있다. 북서쪽으로는 몽골 초원 — 말 탄 사람들의 세계가 열려 있고, 남서쪽으로는 중국 농경지대 — 성벽과 밭의 세계가 이어지며, 동쪽과 남쪽으로는 숲과 강과 바다가 감싼다. 초원도 아니고 순수한 농경지대도 아닌 곳. 두 세계가 만나고 스며드는 이 자리에서 고조선, 부여, 그리고 고구려가 자라났다.

그 "사이의 성격"은 이 나라들의 몸 곳곳에 새겨져 있다. 부여의 벼슬 이름부터가 그렇다. 임금 아래 네 대신을 마가·우가·저가·구가라 불렀는데, 풀어 쓰면 말 어른, 소 어른, 돼지 어른, 개 어른이다. 가축의 이름이 그대로 관직이 된 나라 — 이 사람들에게 가축이 무엇이었는지를 벼슬 이름이 증언한다. 그런데 같은 부여를 두고 중국 기록은 "토질이 오곡에 알맞다"고도 적었다. 목축의 이름을 단 벼슬과 곡식이 잘 되는 땅, 두 세계가 한 나라 안에 겹쳐 있는 것이다. 고구려는 더 노골적이다. 중국 역사서(삼국지 위서 동이전)는 고구려에 "앉아서 먹는 자가 만여 명"이라고 적었다 — 농사짓지 않는 전사와 귀족 계층을 먹여 살리는 구조, 주변에서 거두어들여 중심을 유지하는 방식은 초원 나라들의 경제와 닮은꼴이다. 그러면서도 고구려는 성을 쌓는 데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나라였다. 유물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고조선을 대표하는 비파형동검은 중국식 검과도 초원식 검과도 다른 독자적 형태로, 만주에서 한반도까지 퍼져 있다 — 두 세계 사이에서 제3의 것을 만들어낸 흔적이다.

"사이"는 약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3편에서 본 것처럼 초원은 기술과 물자가 오가는 고속도로였고, 완충지대는 그 고속도로의 나들목이었다. 초원의 말과 기마술, 중국의 철기와 문자가 모두 이 자리를 거쳐갔고, 사이에 선 나라들은 양쪽 것을 먼저 받아 자기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집트가 바깥에서 온 힉소스에게 전차와 강궁을 배운 뒤에야 제국으로 뻗어나갔듯(정착 세계는 종종 바깥의 자극으로 도약한다), 만주와 한반도의 나라들은 아예 상시적으로 그 자극 속에서 살았다. 부딪히는 자리가 만들어지는 자리였다.

여기서도 선을 분명히 긋자. "두 세계의 요소를 모두 지녔다"는 말은 "초원 민족이 전부 우리 조상"이라는 말이 아니다. 흉노·선비·돌궐은 이웃하며 겨루고 교류한 세력이지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 아니며, 이 구분을 흐리는 순간 이야기는 역사에서 소원 성취의 문학으로 미끄러진다. 완충지대의 진짜 매력은 혈통의 확장이 아니라 성격의 복합에 있다 —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제3의 정체성을 빚어냈다는 것, 그것이 이 나라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앞서 본 "기록의 기울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이 나라들을 거의 전적으로 중국 기록을 통해 본다 — 동쪽 오랑캐라는 제목이 붙은 장(동이전) 속에서. 만약 부여와 고조선이 자기 손으로 남긴 기록이 온전히 전해졌다면, 마가와 우가의 나라는 스스로를 뭐라고 소개했을까. 남의 시선으로만 남은 역사를 뒤집어 읽는 것 —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해온 그 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옛 나라들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시야를 지구 반대편으로 넓힌다. 이 모든 이야기의 무늬가,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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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움직이는 인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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