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개의 침공 — 서쪽 2천여 리를 잃다
기원전 3세기 초, 연나라 소왕은 장군 진개를 보내 고조선의 서쪽을 쳤다. 『위략』은 그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전한다 — "땅 2천여 리를 취하고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로 삼으니, 조선은 마침내 약해졌다." 동호에 인질로 가 있으며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가 돌아와 기습했다는 진개는, 동호를 천여 리 몰아낸 데 이어 고조선 방면까지 밀어붙인 연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다. 이 침공으로 고조선은 요동 방면의 세력권을 크게 잃고 중심지가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중심지 이동설의 뼈대다 — 통설은 이후의 경계를 대체로 청천강 방면으로 본다. 다만 "2천여 리"를 어떻게 읽을지, 경계였다는 만번한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는 문제다. 확실한 것은 이 패배가 고조선의 무게중심을 바꿔 놓았고, 그 격동 속에서 세형동검으로 대표되는 새 문화가 청천강 이남에서 꽃피게 됐다는 고고학의 큰 그림이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진개
-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위략 인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조선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선사 지도(신화시대~고조선)의 사건입니다 — 선사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