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인민유격대 사업보고서 — 산이 스스로 남긴 통계

1951년 7월 10일 · 지리산 일대(경남도당 유격대사령부)

1951년 7월 10일자로 경상남도 인민유격대사령부가 작성한 사업보고서에는 부대가 자기 구성원을 직접 집계한 「성분별 통계표」(1951년 3월 현재)가 들어 있다. 총원 1,258명(남 1,220·여 38). 출신성분은 빈농 1,054명(83.8%), 노동자 124명, 중농 60명, 사무원 13명, 학생 6명, 부농 1명이었다. 남한 빨치산이 좌익 지식인이나 인텔리 혁명가였다는 통념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숫자다 — 산에 있던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가난한 농민이었다.\n\n같은 보고서의 「세력 통계표」는 1950년 11월부터 월별 인원과 전사·부상·이탈·포로를 세었고, 1951년 3월 한 달에 전사 48명·부상 114명·이탈 31명을 적었다. 이 표들은 경남 한 도, 1951년 봄 한 시점의 기록이며, 문서 자체에 수정 흔적(총계 1,156→1,258)이 있어 "최종 기재값"으로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표는 누가 있었는지를 말할 뿐 왜 올라왔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원문 스캔과 판독표는 자료실 「빨치산 자료집 읽기」에 있다.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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