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묘비 — "저명한 조선 빨찌산 대장"

1951년 10월 25일 · 크즐오르다 중앙공동묘지(카자흐스탄)

홍범도가 죽은 지 8년, 봉분이 내려앉자 크즐오르다의 고려인들과 옛 전우들이 분묘수리위원회를 만들어 성금 2,000여 루블로 철비를 세웠다. 앞면에 한글로 "저명한 조선 빨찌산 대장 홍범도 묘", 뒷면에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찌산 대장 홍범도의 일홈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라고 새겼다. 건립자는 레닌기치 신문사 동인과 고인의 전우들이었다.\n\n같은 해 겨울 지리산에서는 같은 단어 "빨치산"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 이유였다. 1951년의 한국어에서 이 말은 최고의 존칭이자 최악의 낙인이었고, 어느 쪽이 진짜 뜻인지를 정한 것은 사전이 아니라 국경이었다. 홍범도 본인은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조사표 직업란에 "의병 28년"이라고 적었다 — 빨치산은 그가 자신을 부른 이름이 아니라 남이 그를 부른 이름이었다. 이 철비의 앞면은 오래 행방을 알 수 없다가 2024년 실물로 확인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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