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자료집 ② 성분별 통계표 — 1,258명 중 빈농 1,054명

1951 3월 · 지리산 일대(경남도당 인민유격대사령부)

원문

성분별통계표 (1951. 3월 현재) [출신성분] 빈농 1,054 · 로동 124 · 중농 60 · 사무원 13 · 학생 6 · 부농 1 — 계 1,258 [사회성분] 농민 844 · 로동 230 · 학생 116 · 사무원 45 · 기타 10 · 소시민 5 · (미판독) 8 — 계 1,258 [성별] 남 1,220 · 녀 38 — 계 1,258 부대별 행: 105대대(90) · ㅂⅢ(96) · ㅂⅠ(322) · ㅂⅡ대대(75) · ㅂ448(173) · ㅂⅠ대대(90) · 206(86) · 201(18) · ㅂ336(206) · 사령부(102)

『빨치산 자료집』 2권 문건편(2), 인쇄 126쪽(PDF 138쪽). 「경상남도 인민유격대 사업보고서」(경상남도 인민유격대사령부, 1951.7.10) 안의 통계표. 손글씨 등사본을 300dpi로 확대해 판독했다. 출신성분과 사회성분 두 분류의 합이 각각 1,258로 정확히 맞아 판독의 자기검증이 된다. 총계 줄은 이전 수치(1,156 등)가 두 번 그어 지워지고 1,258로 고쳐져 있어 "최종 기재값"으로 읽어야 한다. 사회성분 한 칸(8명)은 항목명을 읽지 못했다. 부대 약호(ㅂⅠ·ㅂⅡ·ㅂⅢ)는 병단으로 추정되나 확정하지 않는다.

현대어로 읽기

1951년 3월 현재 경상남도 인민유격대의 총원은 1,258명이다. 태어난 집안의 계급(출신성분)으로 보면 가난한 농민 집안 출신이 1,054명으로 83.8%를 차지하고, 노동자 집안 124명, 중농 60명, 사무원 13명, 학생 6명, 부농 1명이다. 현재 직업(사회성분)으로 다시 세면 농민 844명, 노동자 230명, 학생 116명, 사무원 45명이다. 여성은 38명, 전체의 3%다.

왜 이 문장인가

이 표는 남한 빨치산에 대한 두 가지 통념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좌익 지식인·인텔리 혁명가라는 상(像)은 학생 6명, 사무원 13명이라는 숫자 앞에서 서지 않는다. 반대로 "산에 있던 사람은 전부 순진한 농민이었다"는 상도 성립하지 않는다 — 부대는 5개 이상의 병단·대대로 편제돼 있었고, 사령부 102명을 두었으며, 표를 이렇게 만들 만큼의 행정 능력이 있었다.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을 따로 센 것 자체가 정보다. 출신에서 학생은 6명인데 사회성분에서 학생은 116명이다 —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있던 젊은이가 100명 넘게 산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 표가 만들어진 이유도 읽힌다. 조직은 구성원의 계급 배경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것이 당의 언어였다. 이 표가 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표는 경남 한 도, 1951년 봄 한 시점의 기록이다. 전남·전북·경북의 유격대는 별도 문서를 봐야 한다. 그리고 이 표는 누가 있었는지를 말할 뿐, 왜 올라왔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빈농 1,054명 가운데 몇 명이 이념으로 올라왔고 몇 명이 가족이 끌려가 죽은 뒤 도망쳐 올라왔는지, 이 표로는 알 수 없다. "입산자 대다수가 여순·보도연맹 피해자 가족"이라는 널리 퍼진 진술을 이 표가 뒷받침하지도, 반박하지도 않는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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