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자료집 ③ 세력 통계표 — 한 달에 전사 48, 부상 114, 이탈 31
원문
세력통계표 월별 인원수: 간부 / 전사 / 계 — 전투가능 / 전사 / 부상 / 리탈 / 포로 / 기타 1950. 11월 · 12월 · 1951. 1월 · 2월 · 3월 … 1951년 3월: 전사 48 · 부상 114 · 리탈 31 · 기타 15 [무기] 중기 · 경기 · 자동총 · M1 · 카빙 · 99식 · 38식 · 박격포 · 수류탄 — 월별 보유 수
『빨치산 자료집』 2권 문건편(2), 인쇄 123쪽(PDF 135쪽). 같은 사업보고서의 표. 인원 칸은 겹쳐 쓴 숫자가 많아 월별 총원은 확정 판독을 보류한다. 1951년 3월 행의 전사·부상·이탈·기타 네 칸(48·114·31·15)만 또렷하다. 무기 칸은 비교적 선명하며 1950년 11월 총 680정, 이후 900~1,000정 안팎으로 읽힌다.
현대어로 읽기
1950년 11월부터 1951년 봄까지 달마다 부대 인원과 손실을 센 표다. 1951년 3월 한 달 동안 48명이 전사했고 114명이 다쳤으며 31명이 부대를 이탈했다. 같은 표의 무기 난에 따르면 부대는 1950년 11월에 총기 680정 정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후 1,000정 안팎을 유지했다.
출처
- [기록보존소] 세력 통계표 원문 스캔(250dpi)
- [기록보존소] 경남 인민유격대 통계표 묶음(인쇄 122~131쪽)
이 글은 빨치산 자료집 읽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왜 이 문장인가
성분별 통계표가 "누가"라면 이 표는 "얼마나"다. 3월 한 달의 손실 193명은 같은 달 총원 1,258명의 15%다. 이런 손실이 매달 이어졌다면 부대는 반년 안에 절반이 사라진다 —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1951년 겨울 백야전전투사령부의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산은 소모전 상태였다. 이탈 31이라는 칸을 눈여겨봐야 한다. 조직이 자기 문서에 이탈자를 세었다는 것은 이탈이 관리 대상이었다는 뜻이고, 산이 이념으로 단단히 묶인 공동체가 아니라 붙잡아 둬야 하는 집단이었음을 스스로 증언한다. 남부군 대원 자서전(1권)이 조직에 제출된 문서라는 점과 함께 읽으면, 산의 내부에도 감시와 강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된다. 이 표를 경찰 쪽 기록과 맞춰볼 수 있다. 한국경찰 일일보고서(3권)에는 1951년 3월 경남 관할 항목이 29건 있다. 같은 달을 두고 산은 전사 48을, 경찰은 자기들이 사살했다는 숫자를 각각 적었다. 그 두 숫자를 나란히 놓는 것이 이 시리즈의 다음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