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렬의 편지 — 산에서 쓴 마지막 기록

1951년 10월 25일 · 일월산(경북 영양·봉화)

1951년 10월 25일, 동해남부전구 빨치산부대(남도부 부대) 정치위원 안병렬이 일월산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이승엽 앞으로 7장짜리 편지를 썼다. 부대 현황 보고와 건의를 담은 공식 문서였다. 이 부대는 1950년 6월 24일 속초항에서 배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경남 동부는 전쟁 내내 인민군에게 점령된 적이 없어 남파 이후 한 번도 중앙당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도부가 병력 3분의 1을 이끌고 태백산맥을 따라 일월산까지 올라간 것은 그 봉쇄를 뚫기 위해서였다.\n\n편지를 쓴 사람은 충남 당진의 가난한 농촌에서 나 경성제2고보와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부를 거친 농업경제학자였다. 해방 후 경성경제전문학교 교수와 민주주의민족전선 토지문제연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토지개혁안을 입안했고, 서른 살에 조선 농업문제 일급 전문가로 꼽혔다. 그가 1948년 월북해 1950년 총을 들고 남으로 내려왔다.\n\n편지는 도착하지 못했다. 이것을 지니고 북상하던 참모장 김정수는 38선 연선에서 사살된 것으로 전하고, 문서는 1952년 1월 13일 국군 20연대 전방지점에서 노획돼 미군 문서로 워싱턴에 넘어갔다. 1952년 1~2월 일월산지구 토벌로 제4지구당 주력이 궤멸한 뒤 안병렬은 기록에서 사라진다. 이 편지가 그의 생애 마지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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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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