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회담 개시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교착되자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측의 휴전회담이 시작됐다(이후 판문점으로 장소를 옮겨 계속된다). 군사적 승패가 아닌 정치적 타협으로 전쟁을 끝내기로 한 결정이었지만,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 송환 방식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회담은 2년을 더 끌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백마고지·단장의 능선 같은 고지 쟁탈전이 계속돼, 협상 테이블 밖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쟁이 "끝"이 아니라 "휴전"으로 봉인되는 과정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세계는 같은 시기
- 베를린 봉쇄 — 냉전의 첫 위기 (1948~1949)
1948년 6월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육로·수로를 봉쇄하자, 미국과 영국은 약 11개월간 공중수송(베를린 공수)으로 서베를린에 생활 물자를 공급해 봉쇄를 무력화시켰다.
독일 분할 점령을 둘러싼 미소 갈등이 군사적 충돌 없이 봉쇄와 공수라는 형태로 표출된 냉전 초기의 대표 사례로, "냉전"이라는 용어가 이 무렵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휴전회담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