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 제1차 봉기

1894년 4월 · 고부·전주 일대

고부 민란이 안핵사의 탄압으로 더 커지자, 전봉준은 인근 동학 조직과 농민들을 모아 본격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이전의 민란이 한 고을 수령에 대한 분풀이에 그쳤다면, 동학농민군은 처음부터 \"보국안민\"을 내걸고 전라도 전역을 무대로 움직이는 조직적 운동이었다. 백산에 모여 진을 친 농민군은 호남 각지에서 합류한 무리와 함께 본격적인 군사 행동에 나섰다. 수십 년 쌓인 농민의 분노가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왜 일어났나

고부 군수 조병갑은 만석보를 쌓아 물세를 거두고 온갖 명목으로 돈을 뜯었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이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했고, 조정이 보낸 안핵사가 오히려 농민을 동학도로 몰아 탄압하자 3월 무장에서 다시 일어났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가르침으로 농민을 묶는 조직이었고, 척왜척양과 탐관오리 처벌이 구호였다.

무엇이 달라졌나

농민군은 황토현·황룡촌에서 관군을 꺾고 전주성을 점령했다. 조정이 청에 원군을 청하자 일본도 군대를 보냈고, 농민군은 외국군 개입을 막으려 전주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세워 스스로 개혁했다.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가을에 다시 일어났으나 우금치에서 기관총 앞에 무너졌다. 30만 명 안팎이 죽었고, 전봉준은 이듬해 처형되었다. 갑오개혁의 신분제 폐지는 이들의 요구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개항기·일제강점기 지도(1876~1945)의 사건입니다 — 개항기·일제강점기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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