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집회 — 척왜양창의

1893년 3월 · 보은 (장내리)

1893년 2월 동학교도 40여 명이 광화문 앞에 엎드려 교조 신원을 호소했으나(복합상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같은 해 3월, 최시형을 비롯한 지도부는 충청도 보은에 전국에서 2만여 명을 불러 모았다. 보은집회에서 동학은 더 이상 종교적 신원에 머물지 않고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 일본과 서양을 물리치자는 정치적 기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정부가 어윤중을 보내 회유하면서 집회는 해산됐지만, 종교 운동이 반외세·반봉건의 정치 운동으로 전환한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이듬해 동학농민운동으로 터질 압력이, 이미 여기서 분명해지고 있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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