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조약 — 닫힌 문이 열리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조약을 강요했고, 1876년 2월 조선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맺었다.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했지만, 부산에 이어 원산·인천을 차례로 개항하고 일본에 해안 측량권과 영사재판권을 내준 불평등 조약이었다. 관세 조항조차 없어 무관세 무역이 강요됐다. 수백 년 닫혀 있던 문이 바깥의 힘에 의해 열린 이 조약은, 조선이 근대 국제질서로 끌려 들어가는 출발점이자, 이후 모든 격동의 첫 단추였다.
왜 일어났나
일본은 1854년 미국의 흑선에 문을 연 뒤 메이지유신으로 서양식 나라가 되었고, 조선에 같은 방식을 쓰기로 했다. 1875년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보내 조선의 포격을 유도한 뒤 이를 구실로 1876년 함대를 이끌고 조약을 요구했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하며 개항 쪽으로 기울던 조정은 청의 권고도 받아 서명했다.
무엇이 달라졌나
조선이 외국과 맺은 첫 근대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었다. 부산·원산·인천이 열리고, 일본인은 조선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었으며, 관세도 없었다. 뒤이어 미국·영국·독일·러시아와도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개화파와 척사파의 대립,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모두 이 문에서 시작된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강화도 조약
- 우리역사넷 임오군란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개항기·일제강점기 지도(1876~1945)의 사건입니다 — 개항기·일제강점기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