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으로 쓴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삼국사기다. 1145년에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과 기록 사이에 천 년이 넘는 간격이 있는 것이다.
김부식은 그 천 년을 무엇으로 메웠을까.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우리 옛 기록도 썼지만, 상당 부분은 중국 책을 참고했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책의 오래된 부분조차 그 뿌리를 따라가면 중국 기록에 닿는다.
이것이 우리가 남의 기록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달리 읽을 것이 없어서다.
부여 사람들이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이야기, 고구려 땅에 좋은 밭이 없었다는 이야기, 예에서 같은 성끼리 혼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우리가 고대사 책에서 읽는 생활상의 거의 전부가 중국 사서에서 왔다. 그것도 대부분 딱 한 권, 3세기 말에 나온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 왔다.
그런데 남의 기록이라는 조건은 생각보다 무겁다.
중국 사서는 우리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자기 나라 관리와 황제가 알아야 할 것을 적었다. 그래서 서술 순서가 늘 비슷하다. 어디에 있고, 얼마나 크고, 어떤 풍속을 가졌고, 누가 다스리고, 무엇이 나는가. 세금을 매기고 사신을 보내고 군대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항목들이다.
정해진 틀로 적었다는 것은 그 틀에 안 맞는 것은 안 적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것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자기를 뭐라고 불렀는지, 무슨 말을 썼는지, 자기 역사를 어떻게 기억했는지는 대부분 빠져 있다. 빈칸도 정보인 셈이다.
게다가 기록한 사람은 대개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사신의 보고서, 국경 관리의 전언, 전쟁에서 잡힌 사람의 진술, 그리고 앞선 책에서 옮긴 문장이 섞여 한 편이 된다. 그러니 같은 편 안에서도 어떤 문장은 직접 본 것이고 어떤 문장은 두세 사람 건너 들은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읽으면 사료가 아니라 그냥 옛날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중국 기록으로 우리 역사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이 적은 기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익히는 쪽에 가깝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먼저 보고, 같은 항목을 여러 사서에서 뽑아 나란히 놓아 보고, 마지막에는 기록이 아니라 기록하는 방식 자체를 본다.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못 박아 두려고 한다.
동이라는 말은 종족 이름이 아니다. 중국이 자기 동쪽을 부르던 범주이고, 시대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이 바뀐다. 선진 시대 문헌의 동이는 지금의 산둥 일대 사람들이고, 삼국지의 동이는 만주와 한반도와 일본이다. 그러니 중국 사서의 동이 기사를 모아 놓고 이것이 우리 조상의 기록이라고 말하면 절반은 남의 이야기를 가져오는 셈이 된다.
오히려 그 범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옮겨 다녔는지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분류했는가를 아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앎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생각보다 깊이 얽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