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라는 말 — 남이 만든 칸에 담긴 내 물건

1 · 산둥 · 만주 · 한반도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못 박아 둔 것이 있다. 동이는 종족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하겠다.

글자부터 보자. 후한 때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는 이(夷)를 이렇게 풀었다. 평이다. 대를 따르고 궁을 따른다. 동방의 사람이다(夷, 平也. 从大从弓. 東方之人也).

여기서 그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큰 대 자와 활 궁 자로 이루어졌으니 큰 활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풀이에 붙은 주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오직 동이만이 큰 대를 따랐으니 큰사람이며,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자는 오래 살아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라고 적었다.

기분 좋은 이야기다. 그래서 자주 인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야 한다.

상나라와 주나라 때 갑골문과 금문에서 夷 자는 실제로는 시(尸)나 인(人)에 가까운 모양이고 활과는 상관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대와 궁으로 이루어졌다는 풀이 자체가 한나라 사람의 해석일 수 있다.

그러니까 동이는 큰 활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은 삼천 년 된 정의가 아니라, 이천 년 전 어느 사전 편찬자가 그 시대의 관념으로 붙인 풀이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그것은 남이 나중에 붙인 것이다.

다음은 자리다.

상나라 갑골문에는 인방, 이방 같은 표현이 나온다. 동쪽에 사는 집단을 가리킨 것으로 본다. 그러다 진나라와 한나라 때에 이르러 동이·서융·남만·북적이라는 네 방위의 구별이 생겼고, 그때부터 이가 동쪽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사이라는 틀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통일 제국이 자리를 잡으면서 정리된 틀이다. 천자가 가운데 있고 사방에 각각 이름 붙은 사람들이 있다는 그림이다.

삼국지 동이전의 서문도 그 그림에서 시작한다. 서경을 인용해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고 서쪽으로는 사막에 미친다고 하면서 구복의 제도를 말한다. 천자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 놓고 그 원마다 이름을 붙이는 세계상이다.

동이는 그 동심원의 한 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칸 안에 들어가 기록됐다.

이제 대상 이야기다. 여기가 가장 자주 오해되는 자리다.

선진 시대 문헌에 나오는 동이는 지금의 산둥 일대 사람들을 가리킨다. 맹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순임금은 저풍에서 나서 부하로 옮겼다가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 사람이고, 문왕은 기주에서 나서 필영에서 죽었으니 서이 사람이다.

이 문장이 종종 이렇게 인용된다. 맹자도 순임금이 동이 사람이라 했으니 순임금은 우리 조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동이는 산둥 사람이다. 만주도 한반도도 아니다. 순임금과 문왕을 나란히 놓고 한 명은 동쪽, 한 명은 서쪽 사람이라고 한 것은, 성인은 어디서 나든 성인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지 종족을 따진 말이 아니다.

반면 삼국지의 동이는 부여와 고구려와 옥저와 읍루와 예와 한, 그리고 왜다. 같은 글자인데 가리키는 사람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두 갈래 오독이 생긴다.

하나는 동이를 우리 조상으로 놓는 읽기다. 이렇게 하면 순임금이 우리 조상이 되고, 산둥의 옛 집단들이 우리 역사가 되며, 동시에 삼국지 동이전에 나란히 실린 왜인도 우리가 된다. 앞의 둘만 가져오고 뒤의 하나는 빼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같은 칸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다. 동이는 오랑캐라는 멸칭이니 그런 기록은 다 무시하자는 읽기다. 그런데 앞서 본 대로 설문의 주는 동이를 어질다고 적었고, 삼국지 동이전 서문도 나름의 무게를 두고 쓰였다. 늘 깔보는 말이었던 것도 아니다.

두 오독은 사실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 말이 좋은 말이냐 나쁜 말이냐를 따진다는 점이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동이는 남이 만든 칸이라는 것이다. 그 칸의 이름도, 범위도, 그 안에 누구를 넣을지도 중국의 사정에 따라 정해졌다. 우리가 우리를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덧붙일 것이 하나 있다. 남이 만든 칸이라는 사실이 늘 손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역대 정사가 고구려와 발해를 동이 열전에, 곧 바깥 나라를 적는 자리에 넣어 두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그들을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말하는 주장에 대한 반박 근거가 된다. 기록자 스스로가 별개의 나라로 취급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자료실의 「역사왜곡에 맞서다」에서 이미 다뤘으므로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적는다.

그렇다고 그 기록을 버릴 수는 없다. 앞의 열여섯 편에서 본 대로 그 칸 안에 3세기 부여의 옷과 고구려의 창고와 삼한의 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이 만든 칸에 담긴 내 물건을 꺼내 쓰되, 칸 자체를 내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시리즈가 하려는 일이다.

사료 읽는 법. 어떤 말이 나를 가리킨다고 해서 그 말이 내 말인 것은 아니다. 남이 붙인 이름을 만나면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누가 붙였는가, 언제부터 그 뜻이었는가, 그리고 그 이름 안에 나 말고 또 누가 들어 있는가.

출처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