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초기 기록과 어긋날 때 — 어느 쪽이 옳은가보다 먼저 물을 것

3 · 삼한 · 고구려

4부는 자주 인용되고 자주 다투는 자리들이다. 앞의 스물세 편에서 만든 도구를 들고 간다.

첫 자리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신라를 기원전 57년에, 고구려를 기원전 37년에, 백제를 기원전 18년에 세워진 것으로 적는다. 그런데 중국 사서를 따라가면 사정이 다르게 보인다.

3세기에 나온 삼국지 한 조에서 백제는 마한의 여러 소국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중국 기록에 백제가 하나의 나라로 뚜렷하게 등장하는 것은 4세기 후반이다. 신라는 5편에서 본 대로 7세기에 나온 양서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열전을 얻는다. 삼국사기가 적은 건국 연대와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 시점 사이에 몇백 년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구려 쪽에는 더 구체적인 어긋남이 있다. 14편에서 본 문장이다.

본래 다섯 부족이 있어 연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계루부라 하는데, 본래 연노부가 왕이었으나 점점 약해져 지금은 계루부가 대신한다.

삼국지는 고구려의 왕실이 한 집안에서 다른 집안으로 넘어갔다고 적는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시조 이래로 그런 교체가 나오지 않는다.

이 어긋남을 두고 오랫동안 견해가 갈려 왔다. 초기 기록의 연대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쪽, 연대는 조정하되 내용은 살릴 수 있다는 쪽, 그리고 우리 기록을 우선해야 한다는 쪽이다. 이 시리즈는 어느 쪽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사료를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짚는다.

첫째, 두 기록이 다를 때 어느 쪽이 옳은가를 먼저 묻지 말고 두 기록이 무엇을 하려고 쓰였는지를 물어야 한다.

중국 사서의 동이전은 19편에서 본 대로 실무 보고서에 가깝다. 어디 있고 얼마나 크고 누구와 말해야 하는가를 채우는 서식이다. 그러니 아직 중국과 직접 상대할 만큼 크지 않은 나라는 그 서식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다. 기록에 안 나온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21편에서 말한 그대로다.

반대로 삼국사기는 12세기에 국가가 편찬한 책이고, 왕조의 계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놓는 것이 그 책의 일 가운데 하나였다. 시작을 이르게 잡고 계보를 끊김 없이 잇는 것은 그런 책이 하는 일이다.

목적이 다르면 다른 것이 적힌다. 한쪽에 없다고 다른 쪽이 거짓이 되지 않는다.

둘째, 20편에서 세운 계통의 규칙을 여기에도 적용해야 한다.

삼국사기는 중국 사서를 폭넓게 참고했다. 1편에서 말한 대로 김부식이 천 년의 간격을 메운 재료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국 책이었고, 7편에서 본 연개소문의 성 표기처럼 중국 쪽 표기를 그대로 따른 대목도 있다.

그러니 어떤 사실이 중국 사서에도 나오고 삼국사기에도 나온다고 해서 두 번 확인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삼국사기가 그 중국 사서를 보고 적었을 가능성을 먼저 지워야 한다.

셋째, 그렇다고 삼국사기의 값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21편에서 본 빈칸들을 떠올려 보자. 자칭, 언어, 건국 이야기, 여성. 중국 사서가 채우지 못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고 금석문이다. 중국 사서에만 있는 것이 있고 우리 기록에만 있는 것이 있다. 두 목록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두 기록이 서로 다른 통로를 통해 왔다는 뜻이다.

넷째, 어긋남 자체가 자료다.

삼국지가 왕실 교체를 적고 삼국사기가 안 적었다면, 왜 안 적었는지를 물을 수 있다. 12세기에 계보를 정리하는 사람에게 왕실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다루기 곤란한 사실이었을 수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를 판정하지 못하더라도, 두 기록이 갈라지는 지점은 각각의 성격을 알려 준다.

사료 읽는 법. 두 기록이 어긋날 때 던질 질문은 셋이다. 각각 언제 무엇을 위해 쓰였는가. 한쪽이 다른 쪽을 보고 썼을 가능성은 없는가. 그리고 이 어긋남이 각 기록의 성격에 대해 무엇을 알려 주는가. 어느 쪽이 옳은가는 그다음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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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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