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만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정사가 줄여 버린 것, 정사가 아예 안 실은 것, 그리고 정사보다 먼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다. 그 빈자리를 메워 주는 책이 넷 있다.
먼저 자치통감이다. 11세기에 사마광이 엮은 294권짜리 역사서인데, 정사와 짜임이 다르다. 정사는 나라별 인물별로 나누어 적기 때문에 한 사건이 여기저기 흩어진다. 자치통감은 해마다 순서대로 적는다. 그래서 어떤 일이 몇 년에 있었는지를 따질 때는 정사보다 이쪽이 분명한 경우가 많다.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처럼 여러 해에 걸친 일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다음은 통전이다. 8세기 말에 두우가 엮었고 제도를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다. 변방문의 동이 항목에 우리 관련 기록이 있다. 관제나 세금 같은 제도를 볼 때 참고가 된다.
세 번째는 책부원귀다. 11세기 초에 완성된 1천 권짜리 방대한 책이고, 외신부에 사신이 오간 기록이 빼곡하다. 어느 해에 누가 무엇을 바쳤는가 하는 기사들이라 읽기에 재미있지는 않다. 다만 값이 있다. 정사가 문장을 다듬으며 잘라낸 대목을 책부원귀가 원래 형태에 가깝게 실어 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번째, 이 편의 주인공인 한원이다.
한원은 660년 무렵 장초금이라는 당나라 사람이 엮었고 송나라 때 옹공예가 주를 달았다. 본래 30권이었는데 중국에서는 남송 이후 목록에서조차 이름이 사라진다. 없어진 책이 된 것이다.
그런데 1917년, 일본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그 일부가 나왔다. 마지막 권으로 여겨지는 번이부 한 권이었다. 길이 15.86미터짜리 두루마리 필사본이고, 지금은 일본 국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원래 용도다. 일본 학자 유아사 유키히코는 한원이 본래 아이들에게 대구 짓는 법을 가르치려고 만든 교재였다고 본다. 장초금이 자기 집안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엮은 책이라는 것이다.
집안 아이들 글공부용 교재 한 권이 천삼백 년을 건너 한국 고대사의 중요한 사료가 됐다. 이유는 그 책에 달린 주석에 있다.
옹공예가 주를 달면서 여러 책을 인용했는데, 그 가운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 책들이 있다. 괄지지, 위략, 수동번풍속기, 그리고 고려기다.
고려기가 특히 그렇다. 641년에 당의 사신 진대덕이 고구려에 다녀오면서 그 나라를 살펴보고 돌아가 남긴 책으로 알려져 있다. 사신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정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친다.
고려기 원본은 없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한원의 주에 인용된 조각들뿐이다. 그러니 이 정보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거친 길을 세어 보면 이렇게 된다. 진대덕이 본 것, 그가 쓴 고려기, 옹공예가 그 책에서 뽑아 붙인 주석, 그 주석이 실린 한원 30권, 그중 살아남은 한 권, 일본의 어느 집 서고, 1917년의 발견.
여섯 단계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무엇이 빠지고 무엇이 옮겨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원 신라전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신라가 본래 백제에 붙어 있었는데, 당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고구려 사람들이 부역을 견디지 못해 잇달아 신라로 넘어왔고 그래서 강성해졌다는 것이다. 수동번풍속기를 인용한 문장이다.
앞서 5편에서 양서 신라전이 백제를 거쳐 얻은 정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라를 백제의 곁나라로 놓는 시선이 여기서도 나온다. 이것이 그 시선의 반복인지, 아니면 6세기 초의 실제 사정이 여러 경로로 전해진 것인지는 따로 따져야 할 문제다.
정리하면 정사 밖의 이 책들은 두 가지를 준다. 하나는 정사가 줄인 것을 되살려 주는 정보다. 다른 하나는 기록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여러 손을 거치는지를 눈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료 읽는 법. 지금 우리가 읽는 고대사 기록 가운데 상당수는 원본이 아니라 인용의 인용이다. 어떤 문장을 만나면 이 문장이 어느 책에 실려 있고, 그 책은 어디서 가져왔으며, 그 원래 책은 지금 남아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가 읽는 것은 누군가가 골라 옮긴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