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 동이열전 — 더 이른 시대를 더 늦게 쓴 책

445 · 남조 송 · 부여

시간이 거꾸로 된 책이 하나 있다.

후한서는 후한, 그러니까 서기 25년부터 220년까지를 다룬다. 그런데 이 책이 쓰인 것은 5세기다. 3세기 말에 나온 삼국지보다 150년쯤 늦다. 더 이른 시대를 다루는 책이 더 늦게 쓰인 것이다.

쓴 사람은 범엽이다. 남조 송나라 사람이고, 445년에 모반에 얽혀 목숨을 잃었다. 그가 남긴 후한서 권85가 동이열전이다.

여기서 실무적인 함정이 하나 생긴다. 후한서에 나오니까 더 오래된 기록이라고 인용하는 경우다. 순서가 거꾸로다. 후한 시대의 일을 5세기 사람이 정리한 것이고, 그 정리의 바탕에는 삼국지가 있다.

얼마나 가까운지는 한 문장만 나란히 놓아 보면 안다.

삼국지 부여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여는 장성 북쪽에 있고 현도에서 천 리 떨어져 있다(夫餘在長城之北, 去玄菟千里). 남으로 고구려, 동으로 읍루, 서로 선비와 접하고, 북쪽에 약수가 있으며 땅은 사방 이천 리다.

후한서 부여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여국은 현도 북쪽 천 리에 있다(夫餘國在玄菟北千里). 남으로 고구려, 동으로 읍루, 서로 선비와 접하고, 북쪽에 약수가 있으며 땅은 사방 이천 리인데, 본래 예의 땅이다(本濊地也).

가운데가 거의 통째로 같다. 방향을 적는 순서도, 약수도, 사방 이천 리도 같다. 옮겨 적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앞뒤가 다르다.

삼국지에 있던 장성이 후한서에서는 사라지고 현도 북쪽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후한서에는 삼국지에 없는 한마디가 붙는다. 본래 예의 땅이다.

네 글자다. 그런데 이 네 글자가 부여와 예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지금까지 끌고 온다. 짧은 대목이지만 이 편이 하려는 말이 여기 다 들어 있다. 범엽은 베낀 것이 아니라 다시 썼다. 뼈대는 가져오고, 어떤 것은 빼고, 어떤 것은 더했다.

무엇을 더했는지가 특히 중요하다. 후한서 부여전에는 삼국지에 없는 이야기가 통째로 하나 들어 있다. 북쪽 색리국 왕의 시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기운을 받아 아이를 뱄고, 왕이 그 아이를 돼지우리와 마구간에 버렸으나 짐승들이 입김을 불어 살렸으며, 자라서 활을 잘 쏘던 그 아이가 도망치다 강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다. 그 아이의 이름이 동명이고, 부여의 왕이 된다.

우리가 아는 주몽 이야기와 뼈대가 같다. 그런데 삼국지 부여전에는 이 이야기가 없다.

그러면 범엽은 이 이야기를 어디서 가져왔을까. 그 시대에는 후한의 역사를 다룬 책이 삼국지 말고도 여럿 있었고, 그중 상당수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후한서는 그 사라진 책들을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한 셈이다. 어느 책에서 왔는지를 두고는 지금도 견해가 갈린다. 여기서는 삼국지에는 없고 후한서에는 있다는 사실까지만 적어 둔다.

정리하면 이렇다. 후한서 동이열전을 읽을 때는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삼국지에서 온 것, 지금은 없어진 다른 책에서 온 것, 그리고 범엽이 정리하면서 손댄 것이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지는 뒤에서 계속 나온다. 후한서 다음에 나오는 중국 사서들도 대개 앞선 책을 바탕에 놓고 다시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문장이 여러 사서에 똑같이 나온다고 해서 여러 번 확인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적은 문장이 여러 번 옮겨진 것일 수도 있다. 같은 이야기를 다섯 사람에게 들었는데 알고 보니 다섯 사람이 다 한 사람에게 들은 것이었던 셈이다.

이 계보를 따져 보는 일은 3부에서 따로 다룬다.

사료 읽는 법. 이 기록은 5세기 사람이 1세기에서 3세기 사이의 일을 적은 것이다. 기록된 시대와 기록한 시대 사이에 길게는 사백 년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미 다른 사람이 쓴 책이 하나 놓여 있다. 후한서를 읽을 때는 이 책이 무엇을 보고 썼는지를 늘 함께 물어야 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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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