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와 북조의 기록 — 우리 쪽이 쓴 글이 처음 통째로 남은 자리

472 · 북위 · 한성

앞 편에서 남조 사서는 찾아온 사신의 말에 기댄다고 했다. 북조는 사정이 달랐다. 국경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북위는 고구려와 직접 맞닿아 있었고, 462년부터는 해마다 사신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웠다. 그러니 북조 사서의 고구려 기록은 남조 것보다 정확한 편이다. 아는 사이였으니까.

그런데 이 시리즈에서 북조 사서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위서 권100에는 우리 쪽 사람이 쓴 글이 통째로 하나 실려 있다.

472년,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며 올린 표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 온 것이 전부 중국인이 우리를 보고 적은 문장이었다면, 이것은 백제 사람이 자기 손으로 써서 보낸 문장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때까지 백제는 남조 쪽과 사귀었다. 그런데 471년을 끝으로 송과의 관계가 한동안 끊긴다. 그러자 이듬해 갑자기 북위로 방향을 튼다. 북위가 고구려와 그렇게 가까운 줄 알면서도 그리로 간 것이다. 급했다는 뜻이다.

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은 동쪽 끝에 나라를 세웠으나 사나운 짐승들이 길을 가로막아, 대대로 교화를 입으면서도 신하의 예를 갖출 길이 없었습니다. 길을 막은 짐승은 고구려다.

이 글을 가지고 가는 사신의 이름도 적혀 있다. 백제 왕이 사사로이 관군장군 부마도위 불사후 장사라는 벼슬을 준 여례와, 용양장군 대방태수 사마라는 벼슬을 준 장무다. 중국식 벼슬 이름을 백제 왕이 먼저 붙여 놓고 그대로 통보한 것인데, 이 대목은 3부에서 조공과 책봉을 다룰 때 다시 쓴다.

이어지는 대목에 이 편의 핵심이 있다.

신과 고구려는 근원이 부여에서 나왔습니다(臣與高句麗源出夫餘). 예전에는 서로 두터웠는데, 저쪽 조상 쇠가 이웃의 정을 가볍게 저버리고 군사를 이끌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신의 조상 수가 군사를 정돈해 나아가 그 쇠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 뒤로 저들이 감히 남쪽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쇠는 고구려 고국원왕이고, 수는 백제 근초고왕이다. 371년 평양성 싸움에서 고국원왕이 목숨을 잃은 일을 백제 왕이 자기 입으로 적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련, 그러니까 장수왕에게 죄가 있으니 군대를 보내 달라고 청한다. 딸을 보내 후궁을 청소하게 하고 자제를 보내 마구간을 돌보게 하겠다, 한 자의 땅도 한 명의 백성도 감히 제 것으로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붙인다.

이 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것은 사실을 적은 기록이 아니라 설득하려고 쓴 글이다. 북위가 고구려를 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 여기 담긴 것은 5세기 백제의 사실이 아니라, 5세기 백제가 북위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고구려의 사정을 나쁘게 적은 대목은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값진 것이 있다. 백제 왕이 자기와 고구려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적었다는 사실이다. 적을 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글에서, 그 적과 자기가 한 뿌리라고 말한 것이다. 5세기 사람이 자기 나라의 계보를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여기 남았다.

그리고 문장 자체가 놀랍다. 한문이 대단히 세련됐고 고전의 표현을 자유롭게 부린다. 그래서 이 표문을 실제로 지은 사람이 누구였을까 하는 물음이 오래 있어 왔다. 한문과 한적에 두루 밝고 국제 감각까지 갖춘 사람, 이를테면 중국에서 건너온 망명인이나 유학을 다녀온 승려 같은 인물이었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더 나아가 475년 한성이 무너진 뒤 그 사람이 왜로 건너가 왜왕 무의 표문도 지었으리라는 견해까지 나왔다.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5세기 동아시아에서 사람과 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결말은 짧다. 북위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3년 뒤인 475년,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시켰고 개로왕은 붙잡혀 죽었다.

같은 내용이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로왕 18년 조에도 실려 있다. 김부식이 위서를 보고 옮긴 것이다. 우리 역사책에 실린 우리 왕의 글이 중국 사서를 거쳐 돌아온 셈이다.

북조 사서의 나머지도 적어 둔다. 주서 권49 이역전에 고구려와 백제가 있고, 북사 권94는 이연수가 북조의 여러 사서를 하나로 다시 묶은 책이다. 남사가 남조 사서들을 묶었듯이 북사도 재편집본이다. 그러니 북사에 나온다고 해서 따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사료 읽는 법. 이 표문은 우리 쪽이 쓴 글이지만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남이 나를 적은 글에는 남의 편견이 들어가고, 내가 남에게 보낸 글에는 나의 목적이 들어간다. 어느 쪽도 그대로 사실은 아니다. 다만 이 글에는 다른 데서 얻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 그 시절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설명하려 했는가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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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적었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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