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에서 잠깐 지나간 기사를 여기서 다시 꺼낸다. 송서 권97에 실린 백제와 왜의 작호 기사다.
이 기사가 임나일본부 논쟁의 문헌적 출처 가운데 하나다. 다만 그 논쟁의 정리는 자료실의 「역사왜곡에 맞서다」에 따로 한 편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 편이 볼 것은 하나다. 그 기사는 대체 어떤 종류의 서류였는가.
18편에서 조공과 책봉의 절차를 봤다. 요점은 이랬다. 주는 쪽이 정해 내려 준다기보다, 받는 쪽이 원하는 것을 올리면 대체로 승인해 주는 절차에 가까웠다는 것.
이 요점을 왜 왕의 작호 기사에 대면 그림이 달라진다.
송서에는 왜 왕이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긴 칭호를 청한 기록이 나온다. 그 칭호 안에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이름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송 조정이 실제로 내려 준 칭호는 그것과 같지 않았다. 청한 목록에서 백제가 빠진 형태로 조정되어 수여됐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두 가지가 동시에 남았다.
하나는 요청서다. 왜 왕이 무엇을 원했는지가 그대로 적혀 있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깎아서 준 쪽의 판단이다. 송 조정은 백제를 왜의 관할 아래 넣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 기사를 읽는 첫걸음은 이것이다. 칭호 안에 어떤 나라 이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그 나라를 지배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 이름을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증거다.
18편에서 본 백제 쪽 사례와 나란히 놓으면 더 분명해진다. 백제 왕은 자기 신하들에게 먼저 중국식 벼슬 이름을 붙여 놓고 그것을 통보하듯 알렸고, 송은 대체로 승인했다. 요청과 승인이라는 같은 절차가 두 나라에서 똑같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기사에서 우리가 실제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5세기 왜 왕권이 자기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자료다. 이것은 왜에 대한 정보다.
둘째, 남조 조정이 동쪽의 나라들을 어떤 순서와 관계로 정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다. 이것은 기록자에 대한 정보다. 3부에서 계속 말한 그 구분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셋째, 백제와 왜가 같은 장부의 같은 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23편에서 관계망 이야기를 했는데, 이 기사가 그 그물의 한 매듭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을 하나 더 적는다. 이 기사가 지배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5세기 한반도 남부와 열도 사이에 사람과 물자와 군사가 오갔다는 것은 여러 자료가 함께 가리킨다. 다만 그 왕래의 성격을 이 한 기사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편에서 세운 규칙이 여기서도 산다. 이 기사는 남조 계통의 한 문서이고, 뒤의 사서들이 이를 옮겼다. 여러 사서에 나온다고 해서 여러 번 확인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25편에서 말한 규칙도 살아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 기사를 읽을 때도 같은 자를 대야 한다. 왜 왕의 요청이 깎여서 승인됐다는 사실은 우리 쪽 논거로 쓰기 좋은 대목이지만, 그것 역시 남조 조정의 판단이라는 점을 함께 적어야 한다.
사료 읽는 법. 문서를 읽을 때는 그 문서가 요청서인지 승인서인지 판결문인지 보고서인지를 먼저 가려야 한다. 요청서에 적힌 것은 사실이 아니라 바람이다. 그리고 요청과 승인이 다를 때, 그 차이에 가장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