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초 중국이 둘로 갈라진다. 북쪽은 유목 계통 왕조들이, 남쪽은 한족 왕조들이 차지하고 이백 년 넘게 따로 간다. 남북조 시대다.
이 분단이 우리 기록에 남긴 자국이 있다. 남조는 육로로 우리와 닿을 수 없었다. 요동과 만주는 북조와 고구려의 무대였다. 그래서 남조가 아는 동쪽 소식은 거의 전부 바닷길로 왔고, 바닷길로 온 것은 사신이었다.
이 한 줄이 남조 사서를 읽는 열쇠다. 삼국지 동이전이 군대가 지나오며 본 것에 기댔다면, 남조 사서는 찾아온 사신이 들려준 말에 기댄다.
찾아온 쪽이 주로 백제였다. 그래서 송서, 남제서, 양서에서 가장 자세히 다뤄지는 나라가 백제다.
먼저 송서다. 5세기에 심약이 쓴 이 책 권97 이만전의 백제 대목에 오랫동안 논쟁이 된 문장이 하나 있다. 백제와 고구려가 본래 요동 동쪽 천여 리에 함께 있었는데, 그 뒤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고 백제가 요서를 차지했다는 것이다(百濟略有遼西).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 문장을 두고 백제가 실제로 중국 대륙에 거점을 두었다는 주장과, 남조 사서의 착오이거나 백제 사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는 주장이 오래 맞서 왔다. 남제서와 양서에도 비슷한 서술이 나오는데, 이것이 확인의 증거인지 아니면 한 문장이 옮겨진 것인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앞 편에서 본 문제가 여기서 다시 나온다.
이 시리즈는 어느 쪽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원문이 말하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 너머는 논쟁이라고 적는 데까지가 우리 일이다.
송서 백제 조에는 또 하나, 작호 기사가 줄지어 있다. 백제 왕이 사신을 보내 장군 칭호를 받고, 자기 신하들에게 미리 붙여 둔 벼슬 이름을 함께 올려 승인을 청한 기록이다. 같은 이만전에는 왜 왕들이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긴 칭호를 청한 기사도 실려 있다. 백제와 왜가 같은 장부의 같은 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기사들이 어떤 서류였는지는 3부와 4부에서 따로 다룬다.
다음은 양서다. 7세기에 요사렴이 썼고, 이 책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이 하나 있다. 신라가 중국 정사에서 처음으로 독립된 열전을 얻는다.
그 전에도 신라 관련 기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지 한전의 사로국이나 진서의 진한 기사가 있다. 다만 하나의 나라로 따로 세워 적은 것은 양서가 처음이다.
계기는 한 번의 사신 파견이었다. 양서 신라조는 보통 2년, 그러니까 521년에 신라 왕이 처음으로 백제를 따라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고 적는다. 왕의 성은 모, 이름은 진이라고 했다. 우리가 법흥왕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양서 신라전은 이때 온 사신에게서 얻은 정보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6세기 전반 신라의 사정이 제법 담겼다. 신라의 관등 이름들, 자분한지, 제한지, 알한지 같은 말이 한자로 옮겨져 이 책에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대목이 나온다.
신라 사신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백제를 따라왔다. 그러면 양나라 사람들이 신라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누구의 입을 거쳤을까. 우리 학계에서는 양서에 실린 신라의 사정 상당 부분이 백제를 통해 전해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오래 이어져 왔다. 그렇게 보면 신라를 백제의 곁나라처럼 놓는 서술이 왜 나오는지도 설명이 된다. 양서 백제전에는 담로 이야기가 유난히 자세한데, 백제 사신이 자기 나라의 지방 지배를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 했는지가 거기 묻어 있다.
덧붙여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521년에 백제가 양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없다. 그래서 양서의 이 대목 자체를 사실과 다르게 보는 견해도 있다.
남제서는 소자현이 6세기에 썼고 권58에 백제가 나온다. 남사는 7세기에 이연수가 남조의 여러 사서를 하나로 다시 묶은 책이다. 그러니 남사에 나온다고 해서 새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정리하면 남조 사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하나는 5세기와 6세기 한반도에 관한 귀한 정보다. 다른 하나는 그 시절 백제가 중국에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어 했는가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정보다. 둘을 섞어 읽으면 곤란하고, 둘 다 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
사료 읽는 법. 남조 사서의 동쪽 기록은 대부분 찾아온 사신의 말에 기댄다. 그러니 이 기록을 읽을 때는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누가 가져왔는가. 가져온 사람에게 유리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기록자가 거짓을 적었다는 뜻이 아니라, 기록자가 들은 이야기에 이미 방향이 있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