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유민의 남하와 삼한의 형성
삼한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한반도 남부에는 일찍부터 진국(辰國)이라 불린 정치체가 있었고, 그 위로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물결이 여러 차례 겹쳐졌다 — 기원전 194년 위만에게 쫓겨 남천한 준왕의 무리, 그리고 기원전 108년 고조선 멸망을 전후해 내려온 유민들이다. 고고학적으로도 이 흐름은 확인된다: 대동강 유역에서 완성된 세형동검 문화가 충청·호남·영남으로 확산되는 양상이 그 발자국이다. 이렇게 토착 사회와 유이민이 뒤섞이며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의 연맹체가 자리 잡아 갔다. 다만 명칭과 실체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 — 고고학은 소국들의 형성을 기원전 3~2세기까지 올려 보지만, 문헌에서 마한이라는 이름이 확인되는 것은 기원전 1세기 이후라는 지적(박대재)이 있다. 삼한의 관계도 대등하지 않았다: 마한이 가장 커서 그 목지국의 진왕이 삼한을 대표했고, 진한의 소국들은 마한 사람을 임금으로 삼는 관계였다고 『삼국지』는 전한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한
- 위키백과 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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