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의 보급과 독자적 청동기 문화의 발전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철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청동기는 원료 확보가 쉽고 단단한 철기에 자리를 내주며 점차 무기·농기구로서의 실용적 쓰임을 잃고, 제사용 도구나 지배층의 위세품 제작에 국한돼 갔다. 흥미롭게도 이 전환기에 오히려 한반도의 청동기 제작 기술은 독자적인 정점에 이른다 — 비파형동검은 날이 좁고 곡선이 사라진 세형동검으로, 거친무늬거울은 훨씬 정교한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로 발전했는데, 이런 청동기를 실제로 부어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거푸집(용범)이 한반도 곳곳에서 출토돼 이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청동기가 제작됐음을 뒷받침한다. 무덤 양식도 다양해져 나무 널에 시신을 넣는 널무덤, 항아리 두 개를 이어붙인 독무덤이 새로 등장했고, 토기 역시 입술에 덧띠를 붙인 덧띠토기와 표면이 매끈한 검은간토기가 함께 쓰였다. 이 시기 철제 농기구(괭이·낫·쟁기·쇠스랑)의 보급은 농업 생산력을 크게 끌어올렸고, 철제 무기의 확산은 집단 간 전쟁을 격화시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분화를 한층 심화시켰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형동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철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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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선사 지도(신화시대~고조선)의 사건입니다 — 선사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