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왕의 남천 — 고조선과 삼한이 이어지는 순간
기원전 194년,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고조선의 준왕은 측근과 남은 무리를 이끌고 뱃길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삼국지』가 인용한 『위략』은 "바다로 들어가 한(韓)의 땅에 자리 잡고 한왕(韓王)을 칭했다"고 전하고, 『후한서』는 한발 더 나아가 "마한을 공격해 깨뜨리고 한왕이 되었다"고 적었다. 훗날 준왕의 후손이 끊긴 뒤에도 그 제사를 받드는 한인(韓人)들이 있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이 남천 기사는 고조선과 삼한을 잇는 가장 극적인 고리다 — 왕조가 무너질 때마다 지배층과 유민이 남쪽으로 흘러들었고, 그 물결이 한반도 남부 사회를 뒤흔들며 재편해 갔다는 큰 흐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준왕이 정착한 곳을 익산(금마)으로 보았고, 최근에는 익산의 소국 건마국 일대에서 이 시기 고조선계 유물이 두드러진다는 발굴 성과가 이 전승과 맞물려 논의된다. 다만 익산의 이른바 무강왕릉은 백제 무왕의 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등, 전승과 사실의 경계는 신중하게 다뤄진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준왕
- 우리역사넷 삼국유사 위만조선 기사
- 나무위키 진한 (위략·삼국지·후한서 원문 인용)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선사 지도(신화시대~고조선)의 사건입니다 — 선사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