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군현과 토착 사회 — 지배는 정복만큼 쉽지 않았다
왕검성을 무너뜨린 한나라는 옛 고조선 땅에 낙랑·진번·임둔·현도 네 군을 세웠다. 그러나 정복과 지배는 다른 문제였다 — 네 군 가운데 낙랑군을 제외한 나머지는 토착 사회의 저항과 재편에 부딪혀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폐지·축소되거나 치소를 옮겼다는 것이 통설이다. 가장 오래 남은 낙랑군조차 그 지배는 점(거점)과 선(교통로)의 지배였지 면(面)의 지배가 아니었고, 위치와 성격을 둘러싼 학계 논쟁도 여전하다. 한편 군현의 존재는 한반도 남부에 뜻밖의 영향을 남겼다 — 낙랑을 창구로 한 교역망을 타고 철기와 문물이 남쪽으로 흘렀고, 삼한의 소국들은 그 교역에 참여하며 성장했다. 지배하러 온 군현이 결과적으로 새 시대의 촉매가 된 셈이다. 낙랑군은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게 축출되며 역사에서 사라진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조선
- 우리역사넷 고조선·한 전쟁
- 위키백과 위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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