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시작
에도시대부터 금을 캐던 니가타 앞바다 사도섬의 광산은 전시체제로 들어서면서 구리·아연 등 전쟁물자를 캐내는 곳으로 바뀌었고, 부족한 인력을 조선인으로 채웠다. 관련 연구와 미쓰비시광업 자료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곳에 동원된 조선인은 최소 1,519명으로 집계된다. 배치는 고르지 않았다. 1943년 사도광업소 자료를 보면 바위를 뚫는 착암부의 82%,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버티는 지주부의 78.6%가 조선인이었다 — 광산에서 가장 위험한 두 공정이다. 진폐증과 낙반 사고가 뒤따랐다. 2024년 7월 사도광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은 등재를 얻는 조건으로 조선인 동원의 역사를 알리기로 했으나, 현장 전시에 "강제"라는 표현은 들어가지 않았고 추도식에서도 강제동원이 언급되지 않았다. 2026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라는 권고를 다시 채택했다.
참고 자료
- 미쓰비시광업 사도광업소 자료(1943)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2026)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