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 세계유산이 된 뒤 사라진 강제성

2024 7월 27일 ·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주장

사도광산은 에도시대 전통 금 생산 기술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조선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일본은 강제 노역과 고된 작업 조건 등을 설명한 전시 자료와 시설을 현장에 설치했다. 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도 매년 현지에서 열고 있다.

(2024년 7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측 설명. 이후 현장 전시와 추도사에서 실제로 사용된 표현은 아래 반박 참조.)

반박

이 주장은 세 지점에서 무너집니다.

■ 1. 현장에 강제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2024년 8월 현지 취재 보도에 따르면, 사도광산 내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유일한 기록은 근대사 연표에 적힌 두 줄이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동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패전에 따라 조선인 노동자가 돌아갔다. 강제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공개 채용을 했다거나 체불임금을 지급했다는 등, 강제노동이 아닌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전시물이 설치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광산 현장에서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등재 협상에서 약속된 전시가 현장이 아니라 별도 시설 한쪽에 배치된 셈입니다.

■ 2.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의 기능

일본 측은 가혹한 노동 조건을 설명하면서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은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고통받았다는 인상을 만듭니다.

그러나 확인되는 자료는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1943년 사도광업소 자료에 따르면 착암부 노동자의 82퍼센트, 갱도 붕괴를 막는 지주부 노동자의 78.6퍼센트가 조선인이었습니다. 착암과 지주는 광산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입니다.

같은 광산에서 일했다는 것과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은 다릅니다. 위험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어 배분됐다면, 그것을 모든 노동자로 뭉뚱그리는 것은 사실을 흐리는 서술입니다.

■ 3. 추도식에 강제동원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2024년 11월 열린 일본 측 추도행사에서 강제동원이나 강제노동 같은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배에 대한 명확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유족들은 일본 측 행사에 불참하고 별도 추도식을 열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추도인지가 빠진 추도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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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된 사실

관련 연구와 미쓰비시광업 자료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은 최소 1,519명으로 집계됩니다. 최소라고 적는 이유는 이것이 확인된 자료 기준의 하한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치와 앞서 인용한 공정별 비율은 일본 측 자료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들이 위험한 공정에 집중 배치됐다는 사실도 일본 기업의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 국제기구의 판단

2026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사도광산 보존현황 보고서를 검토한 뒤 결정문을 채택했습니다. 위원회는 일본이 추가 조치를 취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해석과 전시 전략이 광산 개발 전 기간에 걸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어떻게 다루는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등재 2년 만에 다시 나온 권고입니다.

■ 짚어야 할 것 — 한국 측의 책임

이 사안을 일본 문제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2024년 등재는 한국을 포함한 21개 위원국 전원 찬성으로 이뤄졌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위원국 합의로 결정되므로, 한국이 반대하면 등재는 어려웠습니다.

당시 국가유산청은 외교부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사도광산의 조선인 숙소 지역이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할 수 없는 증거라며 강제동원에 대한 전체 역사 해설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시물에 강제동원 표현이 빠진 채 등재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정리됐습니다.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받고 찬성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둘 다 기록되어야 합니다.

■ 남은 것

등재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유네스코의 권고에는 강제력이 없고, 일본이 이행하지 않아도 제재는 없습니다. 등재 취소는 유산 자체가 훼손된 경우에나 고려되는 사안입니다.

그러므로 남는 것은 기록뿐입니다. 무엇이 약속됐고 무엇이 지켜지지 않았는지를 매년 확인하고 남기는 일. 2026년의 결정문도 그 기록의 하나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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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제동원의 기록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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