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는 길 위의 기록이다. 앞의 열세 권은 집과 고을과 유배지에서 쓴 일기였다. 이제부터 넷은 움직이는 사람이 쓴 것이다. 첫 편은 가장 유명한 책, 열하일기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안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교과서에 나오고 실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니 무언가 무거운 사상서 같은데, 펼치면 여행 일기다. 날짜를 적고 그날 몇 리를 갔고 무엇을 먹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적었다. 이 시리즈가 이 책을 다시 다루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상의 요약이 아니라 하루의 기록으로 읽어 보려는 것이다.
【왜 갔나】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는 사절단이 떠났다. 그 단의 우두머리가 박지원의 팔촌 형 박명원이었고, 박지원은 자제군관이라는 자격으로 따라갔다. 공식 임무가 없는 수행원이다. 벼슬이 없었으니 보고서를 쓸 의무도 없었다. 이 신분이 이 책을 만들었다. 의무가 없으니 마음대로 보고 마음대로 적을 수 있었다.
길은 이렇게 갔다. 한양을 떠나 의주까지 가서 압록강을 건넌다. 6월 24일이다. 요동과 심양을 지나 산해관을 넘고 연경에 닿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제가 피서지인 열하에 있다는 소식에 사절단이 다시 북쪽으로 달려야 했다. 만리장성을 넘어 열하까지 갔다가 연경으로 돌아오고, 그 뒤에 조선으로 귀국한다. 넉 달 남짓의 여정이다. 이 예정에 없던 열하행이 책의 제목이 됐다.
【그가 본 것】 압록강을 건넌 첫 대목부터 그는 이상한 것을 본다. 벽돌이다. 중국 집은 벽돌로 성과 담을 쌓는데 조선은 돌을 그냥 쌓는다. 그는 벽돌의 규격이 같고 쌓는 법이 정해져 있어 튼튼하고 빠르다는 것을 적었다. 그다음은 수레다. 조선이 가난한 큰 이유를 그는 수레를 쓰지 않는 데서 찾았다. 길이 좁아 수레가 못 간다고 하지만, 수레가 안 다니니 길이 좁은 것이라고 뒤집어 적었다.
유명한 대목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중국의 잘 만든 것 가운데 하나로 거름 무더기를 꼽았다. 똥을 가지런히 쌓아 둔 모양을 보고, 저것도 저렇게 쓰면 재산이 된다고 본 것이다. 사대부가 똥을 칭찬한 것이니 당시 눈에는 망측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용후생이라는 말의 실제 내용이다. 백성의 삶에 쓸모 있는 것을 먼저 보자는 태도다. 사상을 설명하는 대신 벽돌과 수레와 거름을 적어 놓으니, 200년 뒤에도 무슨 말인지 바로 안다.
중국 사람들과 붓으로 나눈 대화도 많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종이에 써서 주고받았는데, 그 필담이 그대로 실려 있다. 천문과 지구가 돈다는 이야기, 서양 학문과 천주교 이야기, 조선과 중국의 제도를 견주는 이야기가 오간다. 그리고 잔치판의 코끼리와 요술쟁이의 재주 같은 것까지 적었다. 요술 구경을 적은 대목은 그 자체로 한 권이다.
【일기 안에 소설이 들어 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일기 사이에 소설이 끼여 있다는 것이다. 호질과 허생전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따로 배우는 그 두 작품이 원래 이 여행 일기 안에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재미있다. 호질은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 중국 여관 벽에 붙어 있는 글을 베껴 왔다고 적어 두었고, 허생전은 이야기꾼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해 놓았다. 검열을 피하려는 장치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부패한 선비와 위선을 정면으로 찌르는 이야기를 자기 이름으로 쓰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여행 일기라는 그릇 안에 남의 이야기라며 넣어 둔 셈이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형식이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포로였던 강항은 하루씩 적을 수 없어 상소와 견문록을 묶었고, 조애중은 한문을 쓸 수 없어 한글로 적었다. 박지원은 하고 싶은 말을 곧바로 쓸 수 없어 여행 일기 안에 소설을 숨겼다.
【욕을 먹은 책】 발표 당시 이 책은 칭찬만 받지 않았다. 보수적인 쪽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를 칭찬했다며 비난했다. 청을 오랑캐로 보고 망한 명을 마음으로 섬기던 시대였으니, 청의 벽돌과 수레를 배우자는 말은 그 자체로 불편했다. 게다가 그는 한문 문장을 격식대로 쓰지 않고 우리말 말맛을 섞어 썼다. 뒤에 임금이 문체를 바로잡으라 한 논의에서 이 책이 거론되기도 했다.
또 이 책은 정식으로 간행되지 못하고 오래 필사본으로만 돌아다녔다. 처음 활자로 간행된 것은 1901년이다. 그의 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백 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그런데 그 필사본이 돌아다녔다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의 인기를 말해 준다. 금지되고 욕먹으면서도 사람들이 베껴 읽었다.
박지원의 친필본은 그의 글을 모아 온 한 학자가 소장하다가 1986년에 기증해, 지금 단국대학교의 문고에 있다. 전체는 스물여섯 권 열 책이다.
【같은 길, 다른 눈】 4부에서 이 책 다음에 홍대용의 을병연행록을 읽는다. 열하일기보다 열다섯 해쯤 앞서 같은 연행 길을 간 사람의 기록이고, 그 사람은 한글로 적었다. 같은 길을 두 사람이 다르게 본 것을 나란히 놓으면, 조선이 청을 어떻게 보기 시작했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1편을 떠올려 보면 좋다. 부북일기의 박취문이 근무했던 회령은 병자호란 뒤 청과 조선이 물건을 바꾸는 시장이 서던 자리였다. 그로부터 140년쯤 뒤, 한 사대부가 그 청의 수도까지 가서 벽돌과 수레를 배우자고 적었다. 오랑캐를 막던 국경이 배울 것을 가져오는 길이 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