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의 열하일기보다 열다섯 해 앞서, 한 사람이 같은 연행 길을 갔다. 그리고 그 여행을 두 번 적었다. 한 번은 한문으로 주제별로, 또 한 번은 한글로 날짜별로. 뒤쪽이 을병연행록이다.
쓴 사람은 홍대용이다. 지구가 돈다고 말한 사람, 혼천의와 자명종을 직접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연행을 떠난 것은 서른다섯 되던 해였다. 작은아버지가 사절단의 서장관으로 가게 되자 그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자제군관이다. 앞 편의 박지원과 똑같은 신분이다. 두 사람 다 임무 없는 수행원이었고, 그래서 마음대로 보고 적을 수 있었다.
【제목의 뜻과 두 개의 기록】 을병은 두 해의 간지다. 을유년에 떠나 병술년에 돌아왔으니 그 두 글자를 붙인 것이다. 여섯 달 남짓의 여정인데, 정작 북경에 머문 것은 두 달쯤이다. 나머지는 길이었다.
그는 돌아와 이 여행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한문으로 쓴 담헌연기는 주제별로 묶었고, 한글로 쓴 을병연행록은 날짜를 따라 적었다. 같은 여행을 문자와 형식을 달리해 두 번 쓴 것이다. 그만큼 이 여행이 그에게 컸다는 뜻이기도 하고, 읽는 사람을 달리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문본은 학자들이 읽을 것이고, 한글본은 집안의 여성과 아이들까지 읽을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한글 기록을 두 번 만났다. 3편 병자일기는 여성이 한문을 쓸 수 없어 한글로 적은 경우였고, 4편 산성일기는 읽는 사람을 넓히려 한글로 옮긴 것으로 보이는 경우였다. 을병연행록은 세 번째 경우다. 한문을 능히 쓰는 사람이 일부러 한글로 한 번 더 쓴 것이다. 조선에서 한글이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가 이 세 권으로 거의 다 보인다.
【천주당과 관상대】 그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 두 가지가 북경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천주당을 찾아가 서양인 신부들을 만났다. 당시 청의 천문 기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과 붓으로 천문과 서양 학문을 주고받고, 서양 문물을 구경했다. 그 필담을 따로 정리해 남기기도 했다. 관상대에도 올라가 천문 기구들을 살펴보았다. 조선에서 혼천의를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 서양 천문학이 실제로 돌아가는 현장을 본 것이다. 앞 편 이재난고의 황윤석이 책으로 서양 수학과 기하학을 익혔다면, 홍대용은 그 기구를 눈으로 보고 만든 사람들과 말을 섞었다.
다른 하나는 우연이었다. 북경의 좁은 골목에서 그는 항주에서 올라온 선비 셋을 만났다. 엄성, 반정균, 육비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종이에 써서 대화했고, 경전과 성리학과 역사와 풍속을 두고 토론했다. 그렇게 한 달쯤 만나며 형제의 의를 맺었다.
【국경을 넘은 우정】 이 대목이 을병연행록을 특별하게 만든다. 조선 사람과 청나라 사람이 친구가 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청은 오랑캐였고, 마음으로는 망한 명을 섬기고 있었다. 그 나라의 선비와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것은 생각의 틀이 한 번 깨졌다는 뜻이다.
헤어진 뒤로도 이어졌다. 그는 돌아와 그들과 나눈 필담을 따로 책으로 엮었고, 셋은 각각 그의 집과 정원에 대한 글을 써 보내 주었다. 우리 시를 모아 항주로 보내기도 했다. 몇 해 뒤 엄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문을 지어 보냈다. 붓으로만 대화하고 다시 만나지 못한 사이인데 그랬다.
이 우정이 뒤에 길을 열었다. 홍대용의 이 경험이 박지원과 박제가 같은 사람들에게 이어져,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되었다. 열하일기가 나온 것이 그 열다섯 해 뒤다. 4부에서 이 두 권을 나란히 놓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같은 길을 먼저 간 사람이 문을 열고, 뒤에 간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가 벽돌과 수레를 보고 왔다.
【두 권을 비교하면】 성격은 다르다. 열하일기는 재미있다. 요술 구경과 코끼리와 소설이 들어 있고 문장이 날렵하다. 을병연행록은 더 차분하다. 날짜를 따라가며 무엇을 보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적는다. 대신 한글이라 지금 읽어도 문장이 바로 들어온다. 우리말로 쓴 여행기가 이 시기에 이미 있었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다.
연행 기록은 조선에서 꾸준히 나왔다. 한문 기록 가운데 세 권을 꼽을 때 홍대용의 담헌연기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나란히 들어가고, 한글 기록 가운데는 이 을병연행록이 대표로 꼽힌다. 뒤에 서유문이 한글로 쓴 무오연행록도 있다. 사절단은 한 해에 몇 차례 오갔으니, 조선이 바깥을 보는 창이 이 길 하나였고 그 창으로 본 것을 사람들이 계속 적었던 셈이다.
【그 뒤】 홍대용의 생각은 이 여행 뒤에 크게 움직였다. 정주학에 품었던 의혹을 서양 천문학과 수학으로 밀고 나가, 땅이 돈다는 이야기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시리즈는 사상을 정리하는 자리가 아니니 여기서 멈춘다. 다만 한 가지는 적어 둔다. 그 생각의 출발점에 여행 일기 한 권이 있다는 것이다. 천주당에서 신부와 붓을 주고받고 골목에서 남의 나라 선비와 형제가 된 여섯 달이, 지구가 돈다는 말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