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양록 —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제목을 자기 기록에 붙인 사람

1597 9월 · 전라도 영광 · 일본 오즈·후시미

이 시리즈의 1부 마지막 편은 조선 밖에서 쓰인 일기다. 쓴 사람은 포로였다.

1597년 가을 정유재란이 전라도를 덮쳤다. 영광의 젊은 관리 강항은 남원에서 군량을 독려하다가 남원성이 무너지자 고향으로 돌아가 격서를 돌려 의병을 모았다. 그러나 모인 사람은 수백에 그치고 이내 흩어졌다. 영광까지 적병이 들어오자 그는 가족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피했고, 그 배가 일본 수군에게 붙잡혔다. 서른한 살이었다. 그는 쓰시마와 이키를 거쳐 시코쿠의 오즈성에 갇히고, 오사카를 지나 교토 근처 후시미로 옮겨진다.

【제목이 먼저 말해 주는 것】 그가 포로 시절에 보고 들은 것을 적어 붙인 제목은 건거록이었다. 건거는 죄인을 태우는 수레라는 뜻이다. 자기 기록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죽음으로 절의를 지키지 못하고 포로가 됐으니 스스로 죄인이라는 뜻이었다. 이 제목 하나가 이 기록 전체의 온도를 말해 준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간양록은 그가 죽은 뒤 제자 윤순거 등이 책으로 엮으면서 고친 제목이다. 간양은 양을 치며 지켰다는 말이다. 흉노 땅에 포로로 끌려가 양치기를 하면서도 절개를 지켰다는 한나라 소무의 고사에서 따왔다. 스승은 자신을 죄인이라 불렀고 제자들은 충절이라 불렀다. 같은 책의 제목 두 개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이 시리즈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앞의 일기들은 쓴 사람이 붙인 이름 그대로 전해졌다.

【무엇으로 되어 있나】 간양록은 하루하루를 순서대로 적은 일기와 조금 다르다. 성격이 다른 글 몇 편이 묶여 있다.

적중봉소는 적진 안에서 임금에게 올리려고 쓴 상소다. 끌려가는 과정과 일본에서의 생활이 요약돼 있고, 자신은 죄인이지만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계책을 올리겠다는 뜻이 적혀 있다. 여기에 일본의 역사와 지리, 전쟁에 동원된 군사의 수와 장수의 이름, 군사 제도, 사람들의 복장, 쓰시마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까지 들어 있다. 적국 한복판에서 쓴 정보 보고서다.

적중문견록은 돌아온 뒤 곧바로 조정에 바친 글로, 일본의 관제를 정리한 그림과 여덟 도 예순여섯 주를 담은 지도, 임진·정유 두 차례 침입한 장수와 병력의 수가 들어 있다. 일본 승려들에게 자료를 구해 베끼고 주를 붙여 설명을 더한 것이다.

고부인격은 끌려간 조선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자기만 살아 나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수만 명이 함께 끌려간 처지에서 나온 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게가 다르다.

예승정원계사는 귀국 뒤 승정원에 올린 글로, 붙잡히고 풀려나기까지의 사정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보고한 것이다. 그리고 섭란사적은 난리를 겪은 일을 적은 글인데, 이 책에서 가장 문학성이 짙은 부분으로 꼽힌다.

그러니 이 책은 보고서이면서 회고이면서 편지다. 앞 편들처럼 그날그날 적은 일기가 아니라, 포로가 되어 쓸 수 있는 형식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기록이다. 매일 종이와 붓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일본을 본 눈】 흥미로운 것은 그가 적국을 관찰한 태도다. 그는 일본의 풍속을 설명하고 자기 평가를 덧붙였다. 온갖 기술자 가운데 최고를 천하제일이라 내세우는 풍습, 궁실과 후원의 모습, 승려들의 생활과 신사, 교역을 좋아하는 성질, 낯선 날씨와 지진까지 적었다. 미워하는 나라의 기술과 제도를 꼼꼼히 적은 것이다. 이것은 조선 지식인이 일본을 안쪽에서 들여다본 드문 기록이 됐다. 30년쯤 뒤 조선통신사가 오가며 남긴 사행록들과 나란히 놓고 읽을 만한 자리다.

동시에 그는 계속 돌아갈 궁리를 했다. 탈출을 시도했다가 잡히기도 했다. 후시미에 있을 때 그의 학식이 알려져 배우려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가운데 승려이자 학자였던 후지와라 세이카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학문을 논했고, 강항은 사서오경을 베껴 주며 조선의 학문 체계와 예법을 설명했다. 세이카는 뒤에 승복을 벗고 유학자가 됐다. 일본 성리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인 포로 한 사람이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는 「경계를 넘은 사람들」의 강항 편에서 구조로 다뤘으니 여기서는 짧게만 적는다.

【돌아온 뒤】 일본 지인들의 도움으로 1600년 그는 가족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붙잡힌 지 만 3년 만이었다. 조정에 일본 사정을 보고하고 벼슬을 받았으나, 죽음으로 절의를 지키지 못했다며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얼마 뒤 사임했다. 몇 해 뒤 다시 임명됐을 때도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책을 읽고 후학을 가르쳤다. 쉰둘에 세상을 떠났다.

돌아온 포로를 보는 조선의 눈이 어땠는지는 이 시리즈 3편에서 이미 보았다. 병자호란 뒤 청에서 돌아온 여성들이 어떤 말을 들으며 살았는지 말이다. 강항은 남성이고 관리였고 적국의 정보를 가져왔으니 처지가 달랐다. 그런데도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남이 씌운 죄와 스스로 쓴 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무거웠는지는 일기가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책 제목을 건거록이라 붙인 사람이라면, 짐작은 간다.

【그 뒤 400년】 간양록은 그가 죽은 뒤 1656년에 제자들의 손으로 간행됐다. 필사본과 목판본이 규장각에 전한다. 조선에서 오래 읽혔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불리한 내용이라 하여 금서로 다뤄지고 판본이 훼손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1980년에는 이 사연이 드라마와 노래로 만들어져 조용필이 부른 「간양록」이 널리 알려졌다. 포로의 기록에 붙은 제목이 대중가요의 제목이 된 것이다.

이 시리즈 1부를 여기서 닫는다. 묵재일기의 성주, 미암일기의 종성, 쇄미록의 임천, 고대일록의 함양, 그리고 간양록의 후시미. 다섯 권을 나란히 놓으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까지 조선 사람이 놓였던 자리가 거의 다 나온다. 유배된 사람, 돌아온 사람, 피란한 사람, 의병을 모은 사람, 끌려간 사람. 그 가운데 자기 처지를 가장 낮게 적은 사람이 적국의 사정을 가장 자세히 남겼다.

출처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일기로 읽는 조선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도에서 관련 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