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의 마지막 편은 땅끝으로 간다. 앞에서 안동과 서울과 고창과 선산을 읽었으니 이번에는 해남이다.
쓴 사람은 윤이후다. 이름이 낯설 텐데, 앞과 뒤가 유명하다. 할아버지가 어부사시사를 쓴 고산 윤선도이고, 넷째 아들이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 공재 윤두서다. 할아버지의 문명과 아들의 그림 명성 사이에 끼여 정작 본인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태어나기 열흘 전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 그의 시작이 이 시리즈에서 본 어떤 이야기보다 가혹하다. 그가 태어나기 열흘 전 아버지가 스물넷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남편을 따라가려 했으나 윤선도가 만류해 아이를 낳았고, 낳은 뒤 음식을 끊어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다 없는 아이가 됐고, 할아버지 윤선도 밑에서 자랐다.
뒤늦게 길이 열렸다. 마흔이 넘어 생원시에 붙고 쉰넷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 시리즈에서 늦은 급제를 여러 번 보았다. 노상추가 서른다섯, 김령이 서른여섯이었다. 윤이후는 쉰넷이다. 그리고 성균관과 병조의 자리를 거쳐 전라도 함평의 현감으로 나갔다.
【1692년 정월 초하루】 일기는 그가 함평현감으로 있던 1692년 정월 초하루에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닷새 전인 1699년 9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다. 필사본 세 책이다. 앞 편의 흠영이 새해 첫날에 시작했던 것과 같은 날짜다.
그는 현감 자리를 한 해 남짓 하고 그만두고 해남으로 내려왔다. 강호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임 현감에게 무고를 당한 일도 있었다. 앞 편 계암일록의 김령이 벼슬을 옳지 않다고 보고 내려왔다면, 윤이후는 벼슬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내려왔다. 낙향하는 감회를 가사로 지었는데 그것이 일민가다. 일기 안에 그 작품이 실려 있다. 그의 문집은 지금 전하지 않아서, 이 일기가 그의 글이 남은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섬을 일구다】 내려온 그가 한 일이 이 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해남 화산 앞의 죽도에 몇 칸 집을 마련하고 그곳을 거처로 삼아 땅을 관리했다. 그냥 은거가 아니었다. 바닷가에 방죽을 쌓아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일, 해언전 개간이다.
이 대목이 조선 후기 경제사에서 중요하다. 17세기 이후 남해안에서는 이런 간척이 활발했고, 그 일을 주도한 것이 지역의 양반 집안이었다. 해남 윤씨는 서남해의 먼 섬까지 경영하며 해산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지암일기에는 그 죽도 경영이 날짜별로 적혀 있다. 언제 방죽을 쌓고 누가 일했고 얼마를 거두었는지. 시를 남긴 집안이 어떻게 먹고살았는지가 여기서 보인다.
이 시리즈 3편에서 조애중이 눈을 녹여 마셨던 무인도의 이름도 죽도였다. 그쪽은 충청도 보령 앞바다고 이쪽은 해남 화산 앞이다. 대나무가 많은 섬이라 이름이 겹친 것이니 혼동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쪽에서는 피란민이 대나무를 베어 막을 쳤고, 다른 쪽에서는 양반이 별서를 짓고 갯벌을 논으로 바꿨다.
【사람이 2500명】 이 일기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이 2500명 가까이 된다. 앞 편 미암일기가 1800명 남짓이었으니 그보다 많다. 8년 일기에 2500명이면 하루하루가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누가 찾아왔고 누구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누구 집에 조문을 갔고 누구와 시를 나누었는지. 집안에서 조상을 기리는 일, 상례와 장례, 호남 지방 인물들과의 교유가 이어진다. 앞 편들에서 본 그 봉제사 접빈객의 세계인데 규모가 훨씬 크다. 이 일기를 연구한 사람들이 관계망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향촌의 양반이 어떤 그물 속에서 살았는지를 이 일기로 그려낼 수 있다.
여행 기록도 많다. 그는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그 때문에 이 일기는 향촌 사대부의 여행기로도 주목받았다. 앞 편 이재난고의 황윤석이 고창에서 서울 가는 길을 적었다면, 윤이후는 호남 안을 촘촘히 다녔다.
【조선을 딱딱하게만 보지 않게 하는 기록】 이 일기의 완역본이 나온 것은 2020년이다. 연구자 여덟 명이 2013년에 착수해 여섯 해가 걸렸다. 마모가 심한 원문에서 한 자라도 더 살리려 애쓴 결과라고 한다. 번역에 참여한 사람의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조선을 경직된 유교 국가로만 이해하는데 이 일기는 그 사회의 보드라운 속살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가 열두 편을 지나 도달한 자리가 정확히 그 말이다. 실록만 읽으면 조선은 명분과 당쟁과 전쟁이다. 일기를 읽으면 밥과 병과 손님과 갯벌과 아이의 죽음이다. 어느 쪽도 거짓이 아니고, 둘을 겹쳐야 그 시대가 보인다.
요즘 이 일기는 새로운 방식으로도 다뤄지고 있다. 일기에 나오는 사람과 장소와 사건을 데이터로 만들어 서로 연결하는 연구다. 누가 누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어느 장소가 어떤 일과 묶이는지를 그물처럼 그려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시리즈에서 일기를 지도 위 루트로 올려 사건 카드와 잇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8년치 일기 한 권이 그렇게도 읽힐 수 있다.
【3부를 닫으며】 18~19세기 다섯 권을 이렇게 놓았다. 67년을 쓴 무관 노상추, 알고 싶어서 적은 황윤석,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목록을 만든 유만주, 벼슬이 옳지 않다고 보고 내려온 김령, 그리고 땅끝에서 갯벌을 논으로 바꾸며 죽기 닷새 전까지 적은 윤이후.
다섯 사람 다 중앙의 큰 자리에 있지 않았다. 변방과 시골과 셋집과 서재와 섬이다. 그런데 그 다섯 권을 겹치면 조선 후기가 어떤 나라였는지가 실록보다 손에 잡힌다. 왕의 역사 밖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