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도로 전국 22개 도시에서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려 약 24만 명이 참여했다. 경찰이 5만 8천여 명을 동원해 강경 진압했지만 시위는 6월 내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6월 26일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이 사상 최대 규모로 펼쳐지며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이 전국을 뒤덮었다. 더 이상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고 군 투입도 어렵다고 판단한 정권은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일어났나
1987년 1월 박종철이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죽었고,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했다.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고문치사 은폐를 폭로했다. 4월 13일 전두환은 개헌 논의를 중단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했고, 6월 9일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6월 10일 민정당이 노태우를 후보로 지명하는 날 전국에서 국민대회가 열렸다.
무엇이 달라졌나
20일 동안 학생과 시민,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왔고 6월 29일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그해 10월 새 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되어 지금까지 쓰인다. 5년 단임 직선제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이때 생겼다. 그러나 12월 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이 갈라져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6월항쟁은 30년 군사정권을 끝낸 분기점이자 현행 헌법의 출발점이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월항쟁
- 우리역사넷 1987년6월항쟁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관련 사건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