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그리고 앞의 열일곱 권과 쓴 사람이 다르다.
지금까지 읽은 일기는 거의 다 양반 남성의 것이었다. 유배된 관료, 피란한 선비, 의병을 모은 유생, 무관, 학자. 예외가 둘 있었는데 여성이 쓴 병자일기와 의유당의 유람기였고, 그 둘도 양반가의 기록이다. 마지막 한 권은 다르다. 왕실에 그릇을 납품하던 사람이 썼다.
【쓴 사람】 지규식이다. 경기도 광주의 분원리에 살았다. 분원은 조선의 왕실 그릇을 굽던 관요가 있던 마을이다. 그는 그 그릇을 궁궐과 서울 상인들에게 납품하고 돈을 받아 오는 일을 맡은 공인이었다. 신분으로는 중인, 혹은 신분을 올리려 애쓰던 평민에 가깝다.
그가 1891년 정월 초하루부터 1911년 윤유월까지 20년 7개월을 거의 매일 적었다. 아홉 책이고 규장각에 있다. 이런 신분의 사람이 쓴 일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이 기록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열일곱 권과 다른 각도로 조선의 마지막을 보여 준다.
【그가 하던 일】 일기에 적힌 그의 하루는 이렇다. 분원에서 만든 그릇을 궁궐과 서울 각지의 상인에게 납품하고 대금을 받아 온다. 몰래 만들어 유통되는 그릇을 막고 감시한다. 분원과 관청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조정한다. 공인들의 권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적었다.
덕분에 이 일기에는 앞의 어떤 일기에도 없는 것이 있다. 그릇의 종류와 값이다. 어떤 그릇을 궁에 올렸고 시중에는 무엇이 얼마에 팔렸는지가 날짜별로 적혀 있다. 도자사 연구자들이 이 일기를 꺼내 드는 이유다. 유물은 남아 있어도 그 값과 유통은 기록이 없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조직이 계속 바뀐다. 왕실에 납품하던 공소가 민영화되고, 회사로 바뀌고, 다시 이름이 바뀐다. 진상 제도가 흔들리면서 경영이 나빠지는 과정이 그 안에 있다. 나라의 제도가 무너지는 것이 한 마을의 가마와 장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보이는 것이다.
다른 나라 그릇과 싸우는 이야기도 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그릇과 일본에서 들어오는 자기가 서울과 경기의 시장을 파고드는 것을 막으려 한 과정이 적혀 있다. 개항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관세나 조약이 아니라 그릇 값으로 보여 주는 셈이다.
【나라가 넘어가는 20년】 이 일기가 덮는 기간을 보면 무엇이 지나갔는지 알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대한제국 선포, 을사늑약, 그리고 1910년의 병합. 그가 붓을 놓은 것은 병합 이듬해다.
그런데 이 일기는 그 사건들을 논하지 않는다. 그는 정치를 평하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 대신 소식이 마을과 시장에 어떻게 닿았는지, 그래서 값과 거래와 사람들의 왕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적었다. 나라가 넘어가는 일을 위에서 본 기록은 많다. 아래에서 본 기록은 드물다.
【그 사람의 다른 얼굴】 일기에는 장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한시를 잘 지었고 책을 가까이했다. 벼슬 자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을 두기도 했지만 끝내 감투는 얻지 못했다. 신분을 올려 보려던 사람이 그 문턱에서 멈춘 자리가 일기에 남아 있다.
마을의 삶도 적혀 있다. 공소에서 잔치를 열어 당대의 이름난 명창을 불러 춘향가를 들었다는 대목이 있고, 떠돌이 연희패와 굿패가 다녀간 이야기, 마을의 제사와 신앙, 집안의 혼례와 상례가 나온다. 판소리와 민속 연구자들이 이 일기를 읽는 이유다.
그리고 1906년, 그는 자기 재산을 들여 마을에 보통학교를 세웠다. 나라가 기울어 가던 때에 한 상인이 학교를 세운 것이다. 말년에는 천도교로 개종해 손병희를 만나고 교리를 배운 기록도 남겼다.
한 사람의 20년에 그릇 값과 판소리와 학교와 종교가 함께 있다.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기가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었다.
【기록이 남고 읽히기까지】 이 일기는 규장각에 있었지만 오래 읽히지 않았다. 한문이고 분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시사편찬 기관이 번역을 의뢰해 2005년 무렵 완역됐고, 지금은 여덟 권짜리 번역본을 전자책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일기 가운데 가장 쉽게 전체를 읽을 수 있는 축에 든다.
【열여덟 권을 덮으며】 부북일기의 회령에서 시작해 하재일기의 분원리에서 끝났다. 300년이 흘렀고, 쓴 사람은 변방 군관에서 유배된 관료, 피란한 양반, 안주인, 의병 참모, 포로, 무관, 학자, 청년, 섬을 일군 사람, 사절단 수행원, 표류한 선비, 유람 나선 부인을 지나 그릇 납품하는 공인까지 왔다.
이 열여덟 권이 공통으로 가진 것이 하나 있다. 아무도 역사를 남기려고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희춘은 19년을 빼앗겨서, 오희문은 떠도는 삶을 잊지 않으려고, 조애중은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황윤석은 알고 싶어서, 유만주는 자기를 들여다보려고, 지규식은 장부를 맞추려고 적었다. 그런데 그 기록들이 실록이 채우지 못한 자리를 채웠다.
왕의 역사는 무엇이 결정됐는지를 알려준다. 이 열여덟 권은 그 결정이 누구의 하루로 이루어졌는지를 알려준다. 눈을 녹여 마신 물 한 모금, 쌀 한 말, 심양으로 붙인 편지, 꿈에 본 아이의 얼굴, 방죽을 쌓은 갯벌, 해가 올라오는 몇 분, 그리고 궁에 올린 그릇 한 벌의 값까지.
이 시리즈를 여기서 닫는다. 다만 덧붙일 것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모아 둔 조선 일기가 수백 종이고, 번역되지 않은 채 문중에 남아 있는 것이 그보다 많다. 고대일록이 1986년에야 후손의 집에서 발견됐고, 지암일기의 완역이 2020년에 나왔다. 우리가 읽은 열여덟 권은 그 바다에서 건져 올린 몇 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