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양반 집에서 어린 상전이 노비 아이를 막대기로 때리고 있었다. 곁에 있던 노비가 다가가 그 막대기를 빼앗았다. 결과는 뻔했다. 막대기를 빼앗은 노비가 매를 맞았다.
이 집에서는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쌀과 벼를 중간에서 빼돌리고, 멀쩡한 바가지를 깨졌다고 속이고, 매를 맞으면 이웃집으로 숨어들었다. 어떤 노비는 억울하게 맞았다며 차라리 이 집을 떠나겠다고 주인 앞에서 큰소리까지 쳤다. 주인은 화를 냈지만 다음 날 그 노비를 조용히 불러 달래야 했다. 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한 주인이 자기 노비가 달아날까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누가 기록했을까. 맞선 노비가 아니다. 노비를 때리고 부리던 주인 자신이 그날 일을 일기에 적어 놓았다.
【쓴 사람】 이름은 묵재일기. 조선 중기 관료 이문건이 남긴 생활 기록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과 승정원을 거쳐 임금의 명령을 가까이서 다루는 동부승지까지 올랐다. 그런데 1545년 을사사화가 터진다. 조카는 목숨을 잃고 그는 관직에서 쫓겨나 경상도 성주로 유배됐다. 앞 편 미암일기의 유희춘을 쓸어낸 그 사화의 같은 물결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관직을 잃었다. 다만 유희춘은 19년 뒤 돌아왔고 이문건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넘게 성주에서 살았다.
일기는 유배보다 먼저 시작된다. 마흔한 살에 어머니 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던 무렵부터 적기 시작해, 관직에 있던 시절과 유배 이후를 지나 일흔셋으로 죽던 해까지 30여 년을 썼다. 원래 스무 책 분량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전하는 것은 열 책, 기간으로는 17년 8개월분이다. 초서로 쓰여 읽기가 까다로워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연구 과제로 원문 교감과 역주를 진행했고, 국사편찬위원회도 원문을 공개하고 있다.
【일기가 없으면 밥상도 없다】 유배된 양반이라고 밥상이 저절로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논밭을 살피고 곡식을 거두고 물을 깃고 약을 다리며 아이와 병자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집안의 노비였다. 그래서 종이를 넘기면 왕도 관리도 아닌 낯선 이름들이 계속 나타난다. 향복, 삼월, 방실, 눌질개, 만수, 주지, 옥춘. 실록에는 남지 않았을 사람들인데, 주인이 누구에게 일을 시켰고 누구를 몇 대 때렸는지 적다 보니 이들의 하루도 함께 살아남았다.
노비 한 명이 사라지면 일손 하나만 비는 것이 아니었다. 밥을 지을 사람, 아이를 볼 사람, 먼 심부름 갈 사람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법과 신분은 주인의 편이었지만 실제 살림은 노비의 손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문건은 노비를 때리면서도 달아날 기색이 보이면 다시 달래야 했다. 노비가 가진 힘은 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인의 하루가 자기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현실에서 나왔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이 일기는 노비가 아니라 주인이 쓴 기록이다. 노비가 왜 화를 냈는지보다 주인이 얼마나 불쾌했는지가 자세하고, 왜 달아났는지보다 달아난 뒤 생긴 손해가 먼저 적혀 있다. 게으르다고 쓰였다고 해서 정말 게으른 사람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도둑질했다는 말 뒤에는 굶주림이, 명령을 어겼다는 말 뒤에는 자기 가족과 물건을 지키려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기록된 사건과 기록한 사람의 판단을 갈라서 봐야 한다. 그러면 주인이 쓰지 않으려 했던 노비의 목소리가 문장 사이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막대기를 빼앗은 손】 이문건에게는 손자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숙길, 집안에서 대를 이을 귀한 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 아이 곁에 있던 아이들 이야기다. 비슷한 또래의 노비 아이들이 함께 마당을 뛰어다녔지만 신분은 전혀 달랐다. 한 아이는 자라서 이 집의 주인이 되고 다른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아이를 섬겨야 했다.
어린 상전이 노비 아이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그 아이의 형이 어른에게 알렸다. 맞은 아이가 보호를 받을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상전의 잘못을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형이 회초리를 맞았다. 무엇이 옳으냐보다 누가 누구의 잘못을 말했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며칠 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을 때는 곁에서 보던 사내종이 상전의 손에서 막대기를 빼앗았다. 어린아이라도 상전은 상전이다. 그는 결국 매를 맞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벌의 결과만이 아니다. 노비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맞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한 아이는 말로 항의했고 한 사람은 손으로 막대기를 빼앗았다. 매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부당하다고 느낀 순간 자기 방식으로 반응했다.
이 작은 저항은 어른들의 세계로 이어진다. 어느 사내종이 매를 맞고는 자기는 죄도 없이 맞았다며 차라리 도망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상전 앞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허세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문건은 그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다음 날 따로 불러 조용히 훈계하고 달랬으며, 일기에는 그가 겉으로만 알아들은 체하며 오래 일할 뜻이 없어 보인다는 불안까지 남겼다.
여기서 주인과 노비의 기묘한 힘겨루기가 드러난다. 법과 신분은 주인의 편이었다. 때릴 수도 있고 일을 시킬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비에게도 마지막 수단이 하나 있었다. 몸을 들고 사라지는 것이다. 노비가 도망치면 주인은 찾는 데 사람과 돈을 써야 했고, 못 찾으면 한 사람의 노동력뿐 아니라 그 노비에게서 태어날 자식들까지 잃었다. 도망은 노비에게 목숨을 거는 선택이었지만 주인에게도 빈말로 넘길 수 없는 위협이었다.
그렇게 싫었다면 왜 모두 달아나지 않았을까. 도망친다고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에는 검문이 있었고 낯선 고을에서 먹고 살려면 몸을 숨겨 줄 사람과 일자리가 필요했다. 붙잡혀 돌아오면 더 큰 매를 맞을 수 있었고, 혼자 달아나면 배우자와 아이를 두고 가야 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멀리 달아났고 어떤 이는 이웃집에 잠시 숨었으며 어떤 이는 도망가겠다는 말만 꺼냈다. 같은 도망이라도 목적이 달랐다. 영영 벗어나려는 도주, 당장 매를 피하려는 회피, 주인을 물러서게 하려는 협박. 이 집 노비들은 자기에게 남은 선택지가 얼마나 좁은지 알면서 그 좁은 틈을 최대한 이용했다.
도망만이 저항은 아니었다. 곡식을 중간에서 빼돌린 정황이 드러난 일이 있는데, 먹을 것이 귀하던 시대에 결코 작은 양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문건은 그 노비를 매질하지 않고 웃고 넘겼다. 왜 그랬는지 일기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비를 계속 부려야 했던 현실이 모든 잘못을 끝까지 처벌하지 못하게 했을 가능성은 있다. 바가지를 깨뜨렸다고 보고한 여종은 벌을 치겠다는 말에 갑자기 사실을 털어놓았다. 깨졌다는 바가지는 멀쩡했다. 이 집 노비들은 정면으로 싸울 수 없었다. 대신 일을 늦추고 물건을 감추고 핑계를 만들고 조금씩 곡식을 빼돌렸다. 큰 반란은 아니지만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저항이었다. 주인도 그것을 알면서 어떤 날은 때리고 어떤 날은 타이르고 어떤 날은 모른 척했다. 언제나 강하게 누르면 노비가 달아났고 언제나 눈감아 주면 통제가 무너졌으니까.
【향복이라는 사람】 아무리 영리하게 움직여도 넘기 힘든 벽이 하나 있었다. 태어날 아이의 신분이었다. 그 벽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람이 여종 향복이다.
향복의 어머니는 삼월, 역시 이 집안의 여종이었다. 아버지가 누구였는지는 기록에서 확인하기 어렵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향복의 신분을 정하는 데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여종이면 그 아이도 주인집의 노비가 되는 종모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향복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집안의 소유였다.
열 살 안팎이 되자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방을 쓸고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거문고를 닦았다. 물을 깃고 불씨를 지키며 약을 다렸고 주인의 손자를 돌보고 아픈 사람을 간병했다. 실수도 많았다. 그릇을 깨고 밥상을 엎고 화초를 죽였다. 그때마다 꾸지람과 매질이 따랐다. 화가 나면 집을 나가 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주인의 눈에는 말썽 많은 여종이었다. 하지만 향복의 처지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남의 방을 치우고 남의 아이를 보고 남의 약을 다려야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향복의 삶에서 가장 조심해서 읽어야 할 대목은 남성들과의 관계다. 여성사 연구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향복은 이문건의 거처에서 시중을 들다가 주인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이문건은 그 일을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자기 일기에 남겼다. 이후 집안의 남성 친족과 여러 차례 관계가 있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향복이 그 잠자리를 찾아갔다고 적힌 날도 있어 그 관계 전체를 한 가지 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던 중 관청에 속한 노비가 밤마다 담을 넘어와 접근했고, 연구자가 강간 피해로 분류한 사건도 이 과정에서 기록된다. 그런데 사실이 드러나자 이문건은 피해를 입은 향복부터 꾸짖었다. 왜 소리쳐 거절하지 않았는지, 왜 상대의 이름을 곧바로 밝히지 않았는지를 문제 삼았다.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제대로 막지 않은 책임까지 물은 것이다.
기록에는 희롱과 간통 같은 당시의 표현이 뒤섞여 있어 각각의 관계에서 향복이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거부했는지 전부 복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종이 여러 남성의 접근에 노출됐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주인의 추궁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서 이 일기는 무서운 기록이 된다. 주인은 질서를 바로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붓이 당대의 이중 잣대까지 함께 남긴 것이다.
향복은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을 낳았다. 이문건은 출산 사실은 적었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적지 않았다. 아버지를 밝히지 않아도 아이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여종이니 딸도 여종이 됐다. 삼월에서 향복으로, 향복에서 다시 어린 딸로. 한 집안의 노비 신분이 여자들의 몸을 따라 삼대째 이어진 것이다. 향복은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 벼슬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방을 쓸고 물을 깃던 날부터 딸을 낳아 또 다른 여종의 어머니가 되는 순간까지 한 사람의 생애가 일기 곳곳에 남았다. 왕조의 공식 기록이 놓친 사람을, 그를 부리던 주인의 기록이 뜻하지 않게 살려낸 셈이다.
【노비들도 자기 살림이 있었다】 그렇다고 노비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한 방에 몰려 산 것은 아니다. 혼인한 노비들은 가족 단위의 생활 공간을 쓰고 사적인 재산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여종이 주인의 아픈 아들 곁을 지켜야 하는 밤에 자기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잔 일이 있다. 추궁을 받자 이웃에 도둑이 들어 각자 방을 지키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인에게는 명령 불복종이었지만 그에게는 자기 방과 물건을 지키는 일이 더 급했던 것이다. 이문건은 그를 처벌했다. 개인 공간과 재산은 있었지만 주인의 부름보다 앞세울 권리까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혼인도 마찬가지였다. 노비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렸지만 부부가 다른 농장에 배치되면 함께 살 수 없었다. 주인의 손자에게 젖을 먹이는 유모로 뽑힌 여종이 자기 아이에게 먹일 젖이 부족해지자 유모 일을 그만둔 일도 있다. 주인의 손자를 돌보는 일과 자기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노비의 일상은 완전한 복종도 완전한 자립도 아니었다. 주인에게 묶인 채 자기 몫과 가족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줄다리기였다.
【손자 하나에 걸었던 20년】 이 일기에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이문건은 손자 숙길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을 따로 책으로 묶었다. 이름이 양아록, 조선 사대부가 남긴 육아일기다. 손자에게 책과 붓을 주고 병이 나면 약을 구하고 공부와 몸가짐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손자의 장수를 빌며 아이팔기라는 액막이까지 했고, 손자가 천연두를 앓고 난 뒤 굿을 한 일도 적었다. 유학을 공부한 선비가 무속에 손을 댄 것이다. 벼슬길이 끊기고 돌아갈 길도 막힌 사람이 무엇에 마지막을 걸었는지가 여기 보인다. 앞 편 미암일기의 유희춘이 유배지에서 경전에 토를 달고 아이들을 가르쳤다면, 이문건은 손자 하나를 붙들었다.
【그래서 무엇이 보이나】 이들의 행동을 모두 의로운 저항이라고 꾸밀 수는 없다. 노비가 다른 노비에게 가해자가 된 사건도 있었고, 곡식을 빼돌리고 거짓말한 일을 오늘의 기준으로 무조건 정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착한 노비와 나쁜 주인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정한 제도 안에서 주인과 노비가 각각 어떤 힘을 썼는지를 보는 것이다. 주인은 법과 매를 가졌고, 노비는 일을 늦추고 숨고 속이고 마지막에는 몸을 들고 달아나는 것으로 맞섰다. 힘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만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이문건도 잔혹한 악인이라는 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병든 노비에게 약을 쓰고 혼인과 출산을 살폈으며 어떤 잘못은 알고도 넘어갔다. 동시에 명령을 어기면 때렸고 달아난 사람을 붙잡아 왔으며 여종이 입은 피해를 여종의 잘못으로 돌렸다. 당시 양반에게 노비는 사람이면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면 약을 줘야 했지만 일을 거부하면 매를 들었고, 혼인을 허락하면서도 부부를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하게 했다. 바로 그 모순 위에서 한 집안이 굴러갔다. 그래서 이 일기가 무서운 것이다. 미화도 변명도 없이 자기 손으로 그걸 다 적어 놨으니까.
【쇄미록의 그 밤이 다르게 보인다】 이 시리즈 2편에서 우리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상전의 말과 재물을 챙겨 밤중에 달아난 노비들을 보았다. 전쟁으로 나라의 감시가 무너졌으니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읽은 묵재일기의 사건들은 그 임진왜란보다 40여 년 앞서 벌어졌다. 왜군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나라의 질서가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날, 한 집안의 울타리 안에서 노비와 주인은 매일 밀고 당기고 있었다.
그러니 임진왜란이 터져 갑자기 충성스러운 노비가 배신자로 변한 것이 아니다. 전쟁 전부터 불만과 계산, 협상과 작은 저항이 쌓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웃집에 숨고 곡식 몇 말을 빼돌리던 사람들이 나라의 감시가 무너지자 멀리 달아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묵재일기가 전쟁 전의 균열을 보여 준다면 쇄미록은 그 균열이 전쟁 속에서 어떻게 터졌는지를 보여 준다. 두 일기는 40여 년 떨어져 있지만 종이 위의 사람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
지금 남은 열 책에는 향복과 삼월, 방실과 눌질개, 만수와 주지의 이름이 남아 있다. 주인은 그들을 자기 재산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470년이 지난 우리는 그 기록에서 재산으로만 살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의 움직임을 읽어낸다. 상전의 손에서 막대기를 빼앗은 손, 깨지지 않은 바가지를 숨긴 거짓말, 곡식을 조금 떼어낸 계산, 매를 맞은 뒤 넘어간 이웃집 담장까지. 거대한 반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조선의 노비가 말없이 복종하기만 했다는 우리의 상상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남긴 사람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주인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기록하려던 붓이 그 권력에 눌리면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흔적까지 함께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