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의 마지막은 여성이 쓴 여행기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일부러 간 기록이다.
앞의 셋을 떠올려 보시면 안다. 박지원과 홍대용은 사절단을 따라갔고, 장한철은 시험 보러 가다 떠내려갔다. 셋 다 목적이 따로 있었다. 이 편의 여행은 다르다. 해돋이와 달맞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보러 가겠다고 남편을 졸라 허락을 받아 간 것이다.
【쓴 사람이 누구인가】 먼저 이름 문제를 짚고 가야 한다. 이 기록의 작자는 오래 논란이었다.
처음 활자로 나온 것은 광복 직후다. 한 국문학자가 원문에 주를 달아 펴내면서, 의유당이라는 당호를 쓴 연안 김씨가 지었다고 소개했다. 순조 때 함흥판관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가 쓴 글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긋나는 것이 나왔다. 글 안에 적힌 연대와 그 남편의 부임 연대가 맞지 않았고, 그가 부임했을 무렵 연안 김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래서 지금은 의령 남씨로 고증됐다. 남편이 함흥판관으로 부임할 때 따라가 마흔여섯에 이 글을 썼다. 그래서 자료에 따라 의유당 김씨로도 남씨로도 적혀 있다. 이 시리즈는 확인된 쪽을 따라 남씨로 적는다.
이름 하나를 놓고 이만큼 헤맨 것 자체가 이 시리즈의 주제이기도 하다. 3편의 조애중은 조선 여인으로는 드물게 이름 두 글자가 전했다. 이 사람은 당호와 본관만 남았다. 글은 남았는데 쓴 사람의 이름은 남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들어 있나】 이 책은 한 편의 일기가 아니라 여러 글의 묶음이다.
낙민루는 함흥의 이름난 누각과 만세교를 구경한 이야기다. 북산루는 북산의 누각에 올라 논 이야기인데, 기생들의 풍악을 들으며 종일 놀다가 날이 어두워 돌아올 때 청사초롱 수십 쌍을 들리고 풍악을 울리며 내려온 대목이 있다. 그 기분을 적어 놓았다. 양반가 부인이 밤에 등불 행렬을 앞세우고 돌아오며 신이 났다고 쓴 것이다.
그리고 동명일기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길고 유명한 글이고 교과서에 실린 것도 이것이다. 동명의 해돋이와 달맞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남편을 졸라 허락을 받은 뒤, 귀경대에 올라 달이 뜨는 것과 해가 뜨는 것을 본 이야기다.
【해가 뜨는 것을 이렇게 적었다】 동명일기가 오래 읽히는 이유는 묘사다. 그는 바다에서 해가 올라오는 순간을 한참에 걸쳐 적었다. 붉은 기운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번지는지, 물빛이 어떻게 바뀌는지, 해가 쟁반 같기도 하고 수레바퀴 같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훌쩍 솟는지.
이 대목의 힘은 한글이라는 데서 온다. 한문으로 쓰면 해돋이는 대개 정해진 문구로 적힌다. 그런데 이 사람은 본 그대로를 우리말로 적었다. 색이 변하는 것을 색이름으로 적고, 크기와 움직임을 손에 잡히는 물건에 빗대어 적었다. 자연 풍경을 묘사하면서 표현이 섬세하고 어휘가 참신하다는 평이 여기서 나온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적혀 있다. 밤중에 나가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가 구름이 끼어 못 볼까 애를 태우고, 사람들이 오늘은 글렀다고 하는데도 버티고, 마침내 보는 데까지. 해돋이를 보러 새벽에 나가 본 사람이면 다 아는 그 마음이 250년 전 글에 그대로 있다.
【여행을 스스로 만든 사람】 이 기록의 자리를 조선 여성의 글쓰기 안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조선 여성이 남긴 여행 기록이 아주 없지는 않다. 남편이나 아버지를 따라 움직인 길을 적은 글들이 있다. 다만 그 여행은 대개 주어진 것이었다. 부임지로 따라가고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다. 이 사람은 다르다. 함흥에 간 것은 남편을 따라간 것이지만, 동명에 간 것은 자기가 가겠다고 해서 간 것이다. 여행을 스스로 기획하고 밀어붙인 것이다. 뒤에 김금원 같은 사람이 산과 강을 찾아다니고 그 기록을 남기는데, 그 계보의 앞자리에 이 글이 있다.
이 시리즈에서 여성이 쓴 기록은 두 번째다. 첫 번째가 3편 병자일기였다. 그쪽은 전쟁에 쫓겨 눈을 녹여 마시며 쓴 기록이었고, 이쪽은 해돋이를 보겠다고 졸라서 간 기록이다. 130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혹은 같은 조선의 어느 자리에 두 사람이 각각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4부를 닫으며】 길 위의 기록 네 권을 이렇게 놓았다. 벽돌과 수레를 보고 온 박지원, 천주당에서 필담하고 골목에서 형제를 얻은 홍대용, 류큐까지 떠내려갔다가 스물한 명을 잃고 돌아온 장한철, 그리고 해돋이를 보러 새벽 바닷가에 앉아 있던 의유당.
앞의 셋은 목적이 있는 길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목적이 그 자체였다. 그리고 넷 중 둘이 한글로 쓰였다. 조선의 여행기가 한문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고, 우리말로 쓸 때 더 잘 살아나는 것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벽돌과 수레는 한문으로도 적히지만, 해가 올라오는 그 몇 분은 우리말이라야 이렇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