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사건 — 수백 명을 암매장한 사교 집단의 실체 발각
백백교(白白敎)는 동학 계통 백도교에서 갈라져 나온 신흥 종교로, 교주 전용해가 1920~30년대 경기 가평 일대에서 교세를 넓혔다. 교리는 종말론이었다 — 세상이 곧 심판으로 멸망하며, 백백교를 믿고 교단의 피난처로 가야만 살아남는다는 것. 식민지의 궁핍과 불안이 이런 교리가 파고들 틈을 만들었다. 실체는 조직적 범죄였다. 교단은 신도의 재산을 갈취했고, 이탈하거나 비밀을 알게 된 신도를 살해했다. 1937년 2월 수사가 시작되자 경찰은 전국 아지트에서 300구가 넘는 암매장 시신을 발굴했고, 희생자는 3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해는 도주 중 양평 용문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으며, 1940년 재판에서 간부 다수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일제가 이 사건에 독립운동 탄압용 보안법까지 적용한 점, 우민화 정책 속에 사교를 방치한 식민 당국의 책임은 이 사건의 또 다른 그늘로 남았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백백교
- 위키백과 백백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