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병연행록 루트

1765~1766

열하일기보다 열다섯 해 앞선 같은 길 — 천주당의 필담과 골목에서 맺은 형제의 의, 그리고 한글로 한 번 더 쓴 여행기

타임라인 (10개 지점)

  1. 떠나기 전 — 혼천의를 직접 만들어 본 사람 (1765 · 충청도 천원(현 천안) 수촌 · 한양)

    그때 나라는: 영조 말년, 청을 오랑캐로 보는 생각이 여전히 단단했다. 그러면서도 청을 통해 들어온 서양 천문학과 수학을 붙드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었다. 이 사람은: 홍대용은 스승 문하에서 공부하며 정주학에 의혹을 품고 서학과 천문과 수학과 병학을 두루 섭렵했다. 책으로 그치지 않고 혼천의와 자명종을 실제로 만들어 보기까지 했다. 앞 편 이재난고의 황윤석이 책으로 서양 수학과 기하학을 익혔다면, 이 사람은 그것을 기구로 만들어 본 쪽이다.

  2. 자제군관으로 따라나서다 (1765 11월 · 한양)

    그때 나라는: 조선의 사절단은 해마다 몇 차례 연경을 오갔고, 그 길이 바깥 소식이 들어오는 거의 유일한 창이었다. 이 사람은: 작은아버지가 사절단의 서장관으로 가게 되자 그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자제군관, 공식 임무가 없는 자리다. 열다섯 해 뒤 같은 자격으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박지원이다. 두 사람 다 임무가 없었기에 마음대로 보고 적을 수 있었다.

  3.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1765 12월 · 의주 · 압록강)

    그때 나라는: 겨울에 강이 얼면 사절단은 얼음 위로 건넜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는 두 달 가까이 걸리는 길이었다. 이 사람은: 여섯 달 여정 가운데 북경에 머문 것은 두 달쯤이고 나머지는 이 길이었다. 그는 날짜를 따라가며 무엇을 보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적었다. 요술과 소설이 끼여 있는 열하일기와 달리 차분한 문장인데, 한글이라 지금 읽어도 바로 들어온다.

  4. 심양과 산해관을 지나 연경으로 (1766 1월 · 심양 · 산해관)

    그때 나라는: 심양은 청이 북경으로 들어가기 전의 수도였고, 병자호란 때 볼모들이 끌려가 있던 곳이다. 이 시리즈 3편의 조애중이 편지를 붙이던 그 도시다. 이 사람은: 사절단은 이 길을 따라 연경에 닿았다. 두 달의 북경 체류가 이 여행의 본론이다.

  5. 천주당 — 서양 신부들과 붓으로 나눈 천문 이야기 (1766 1월 · 연경 천주당)

    그때 나라는: 청의 천문 기관에는 서양인 신부들이 일하고 있었다. 조선은 청의 역법을 받아 쓰고 있었으니, 그 역법을 실제로 계산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이 사람은: 그는 천주당을 찾아가 흠천감의 서양인 신부 두 사람을 만났다. 말이 통하지 않아 붓으로 천문 기술과 서양 학문을 주고받았고, 서양 문물을 구경했다. 그 필담을 따로 정리해 남겼다. 이것이 그가 이 여행에서 의도했던 일이다.

  6. 관상대 — 만들어 본 사람이 실물을 보다 (1766 1월 · 연경 관상대)

    그때 나라는: 북경의 관상대에는 천문 관측 기구들이 갖춰져 있었다. 조선에서 그 규모를 볼 기회는 없었다. 이 사람은: 그는 관상대에 올라 기구들을 살펴보고 천문 지식을 넓혔다. 조선에서 혼천의를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 서양 천문학이 실제로 돌아가는 현장을 본 것이다. 앞 편 열하일기의 박지원이 벽돌과 수레를 보았다면, 이 사람은 하늘을 재는 기구를 보았다.

  7. 간정동 골목 — 항주에서 온 선비 셋을 만나다 (1766 2월 · 연경 간정동)

    그때 나라는: 조선에서 청은 오랑캐였고, 마음으로는 망한 명을 섬기고 있었다. 그 나라 선비와 사귄다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북경의 좁은 골목에서 항주에서 올라온 선비 엄성·반정균·육비를 만났다. 붓으로 경전과 성리학과 역사와 풍속을 토론하며 한 달가량 만났고, 형제의 의를 맺었다. 의도한 일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온 만남이었는데, 그의 생각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이 이쪽이었다.

  8. 돌아와 같은 여행을 두 번 적다 (1766 4월 · 한양)

    그때 나라는: 사행 기록은 대개 한문으로 썼다. 한글로 쓴 연행록은 드물었다. 이 사람은: 그는 이 여행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한문으로 주제별로 묶은 담헌연기, 그리고 한글로 날짜를 따라 적은 을병연행록이다. 같은 여행을 문자와 형식을 달리해 두 번 쓴 것이다. 한문본은 학자들이 읽을 것이고 한글본은 집안의 여성과 아이들까지 읽을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만난 세 번째 한글 기록이며, 한문을 능히 쓰는 사람이 일부러 한글로 한 번 더 쓴 경우는 이것뿐이다.

  9. 국경을 넘은 우정 — 다시 만나지 못한 사이 (1768 · 항주)

    그때 나라는: 조선과 청의 개인이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사절단의 왕래에 실려서만 가능했다. 몇 달이 걸리고 사라지기도 했다. 이 사람은: 헤어진 뒤로도 이어졌다. 그는 필담을 책으로 엮었고, 셋은 각각 그의 집과 정원에 대한 글을 써 보내 주었다. 우리 시를 모아 항주로 보내기도 했다. 몇 해 뒤 엄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문을 지어 보냈다. 붓으로만 대화하고 다시 만나지 못한 사이인데 그랬다.

  10. 열다섯 해 뒤, 그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 (1780 · 한양)

    그때 나라는: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박지원·박제가·이덕무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그 생각이 뒤에 북학이라 불린다. 이 사람은: 홍대용의 이 경험이 그들에게 이어졌다. 청의 선비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먼저 본 사람이 문을 열고, 열다섯 해 뒤 박지원이 그 문으로 들어가 벽돌과 수레를 보고 왔다. 한문 연행록 가운데 세 권을 꼽을 때 홍대용의 담헌연기가 열하일기와 나란히 들어가고, 한글 연행록 가운데는 이 을병연행록이 대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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