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의 세 번째는 가려던 곳에 못 간 여행이다. 앞의 두 권은 사절단을 따라 계획대로 다녀온 길이었다. 이번 것은 계획이 첫날에 무너졌다.
쓴 사람은 장한철, 제주 사람이다. 1770년 제주에서 치른 향시에 합격해 이듬해 한양에서 대과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관에서 여비를 모아 주었다고 한다. 섬에서 과거 보러 뭍으로 나가는 일이 한 마을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해 12월 25일, 일행 스물아홉 명이 장삿배를 타고 제주의 조천 포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배는 오키나와 근처의 무인도에 있었다.
【사흘 동안 떠내려가다】 출항한 지 얼마 안 되어 풍랑을 만났다. 사흘을 바다에 떠돈 끝에 12월 28일 류큐 열도의 한 무인도에 닿았다. 그 섬 이름이 기록에 호산도로 남아 있다.
표류하는 사흘의 기록이 이 책의 앞부분이다. 그리고 이 대목이 왜 해양 지리서로도 꼽히는지 보여 준다. 그는 날씨가 흐렸는지 맑았는지, 바람이 어느 쪽에서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파도의 높이와 빛깔이 어땠는지,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렀는지를 적었다. 지남철로 방향을 살피고 밤에는 별을 보아 위치를 짐작했다. 표류하면서도 관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상태도 적혀 있다. 항해 중에 고래를 만난 날, 스물아홉 명의 얼굴빛이 노랗게 되어 배 안에 엎드려 고래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저마다 관세음보살을 외며 무사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뒤에 멀리 한라산이 보이던 날에는 설문대할망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다. 유학을 공부해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배 안에서 부처와 제주의 여신을 함께 부른 사람들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꿈으로 길흉을 점친 선비도, 손자를 위해 굿을 한 선비도 보았다. 바다에서는 그 경계가 더 없어진다.
【섬에서 겪은 일】 무인도에 닿은 뒤 정월 초에 사람들을 만났는데, 도움이 아니라 물품을 빼앗기는 일을 겪었다. 그리고 안남에서 일본으로 가던 상선을 만나 구조됐다. 안남은 지금의 베트남이다. 18세기 동아시아 바다에 그런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는 것이 표류기 덕분에 보인다.
그런데 그 배 안에서 위기가 있었다. 일행이 제주 사람이라는 사실을 두고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배에 타고 있던 명나라계 사람의 도움으로 풀려났다고 적혀 있다. 왜 제주 사람이라는 것이 위험했는지는 이 책만으로 다 알 수 없다. 다만 표류민이 어디 사람인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세계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돌아오는 길에 더 많이 죽었다】 정월 초엿새 흑산도 근처까지 왔다.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런데 다시 풍랑을 만났고, 배는 청산도에 떠밀려 닿았다. 그 과정에서 스물아홉 명 가운데 스물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표류해 나갈 때보다 돌아오는 길에 더 많이 죽은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청산도를 거쳐 강진으로 나왔다. 일부는 제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장한철은 한양으로 갔다. 과거를 보러 온 길이었으니까. 그해 2월 한양에 도착해 시험을 치렀고, 떨어졌다.
다섯 달의 일이 그렇게 끝났다. 스물여덟 명 중 스물한 명을 바다에 잃고, 본인은 시험에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해 5월 제주에서 이 기록을 정리했다. 표류하는 동안 적어 둔 것이 바닷물에 젖어 망가졌기 때문에, 섬에서 일차로 적어 둔 것을 돌아와 다시 정리한 것으로 연구자들은 본다. 그래서 오히려 그때의 상황과 마음의 변화가 자세히 남았다.
【이야기가 함께 실렸다】 이 책에는 표류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의 삼성 신화, 백록담과 설문대할망 이야기, 류큐의 태자에 관한 전설 같은 것이 함께 적혀 있다. 그래서 설화집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바다에서 죽을 뻔한 사람이 그 바다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적어 놓은 셈이다.
이 대목이 이 시리즈가 계속 말하는 것과 통한다. 나라의 기록은 어느 해에 표류선이 몇 척 있었다고 적는다. 개인의 기록은 그 배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빌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적는다.
【표해록이라는 이름의 책들】 표해록은 한 권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 그 이름으로 불리는 기록이 여러 권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최부의 표해록이다. 제주 앞바다에서 표류해 중국 대륙을 종단하고 살아 돌아온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 5편을 기억하시면 좋다.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그 최부다. 기록하는 집안의 외손자가 19년 유배에서 돌아와 10년을 적었고, 그 일기가 실록의 빈칸을 채웠다.
또 하나는 문순득의 표해록이다. 흑산도 사람이 홍어를 사러 나갔다가 류큐를 지나 필리핀까지 떠내려가고 중국을 거쳐 돌아온 이야기다. 본인이 글을 몰라서, 그 섬에 유배돼 있던 정약전이 구술을 받아 적었다. 두목님이 「경계를 넘은 사람들」에서 이미 쓰신 사람이다.
세 권을 나란히 놓으면 조선 사람이 바다에서 어디까지 흘러갔는지가 보인다. 중국 대륙, 류큐, 필리핀. 그리고 그 표류가 뜻하지 않게 조선이 바깥을 보는 창이 됐다. 사절단이 육로로 연경만 오가던 시대에, 바다에 떠내려간 사람들이 그보다 먼 세계를 보고 돌아왔다.
【뒷이야기】 이 표해록은 한문 필사본 한 책으로 전한다. 국립제주박물관에 있고, 2008년 제주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문학적으로 아름답다는 평을 받으면서 동시에 해류와 계절풍을 알 수 있는 해양 지리 자료로도 쓰인다.
장한철은 뒤에 벼슬길에 나갔다고 전한다. 다만 이 시리즈가 그를 다루는 이유는 그 뒤의 이력이 아니다. 과거 보러 가던 길이 무너진 뒤, 죽은 사람 스물한 명과 자기가 본 바다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여행기는 대개 다녀온 사람이 쓴다. 이것은 가려던 곳에 못 간 사람이 쓴 여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