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암일록 —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앉아 38년을 적은 사람

1603 7월 1일 · 경상도 안동 예안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유배된 사람, 피란한 사람, 끌려간 사람, 자리를 얻으려 애쓴 사람을 읽었다. 이번 편은 자리를 얻었는데 스스로 내려놓은 사람이다.

쓴 사람은 김령이다. 안동 예안에 뿌리내린 광산 김씨 집안 사람이고, 아버지는 퇴계 이황의 제자였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벼슬하던 무렵 태어나 다섯 살에 글을 읽기 시작했고, 열다섯에 도산서원의 강학에 참여했다. 그 나이에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학문이 남달랐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그는 열일곱이었다. 유성룡의 막하로 스스로 종군했고,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니 전쟁을 겪은 세대다. 다만 그가 일기를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나고 몇 해 뒤, 스물여섯 되던 해 7월 초하루였다. 그리고 예순넷으로 세상을 떠난 해 3월까지 썼다. 38년, 여덟 책이다. 간간이 빠진 날짜가 있지만 거의 끊기지 않았다.

【급제하고 4년, 그리고 낙향】 서른여섯에 문과에 급제했다. 광해군 때였다. 그런데 그는 4년쯤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대북 정권의 전횡을 보고 뜻을 접은 것이다. 왕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대비를 폐위하는 일이 있던 무렵의 이야기다.

인조반정으로 정권이 뒤집힌 뒤 조정이 다시 그를 불렀다. 그는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을 마쳤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동방의 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이는 옳지 않다고 여긴 왕조에서 벼슬하지 않고 굶어 죽은 옛 중국 사람이다.

여기서 이 일기가 특별해진다. 인조반정은 대개 잘못된 정권을 바로잡은 일로 이야기된다. 그런데 그는 그 반정의 타당성에도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적어 두었다. 광해군 정권이 싫어서 내려간 사람이 그 정권을 뒤엎은 쪽에도 나가지 않은 것이다. 나라의 기록은 어느 편이 이겼는지를 적지만, 초야에 앉은 사람의 일기는 이긴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적는다.

【초야에서 본 나라】 그가 고향에 있었기 때문에 이 일기는 오히려 넓다. 벼슬하지 않았는데도 중앙 정치의 소식이 계속 들어온다. 조정의 일, 지방의 정치적 사건, 그리고 앞 편들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는 일상이 함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방관의 수탈이다. 세금을 거두는 방식이 어떻게 백성을 짜내는지, 그래서 민생이 어디까지 어려워졌는지가 적혀 있다. 또 하나는 향시의 폐단이다. 지방에서 치르는 과거에서 벌어지는 부정을 그는 가차 없이 적었다. 시험에 인생을 걸었던 앞 편의 노상추를 생각하면 이 대목이 다르게 읽힌다. 누군가는 열 해 넘게 활을 쏘며 재산을 쏟았고, 그 시험판은 이미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던 동안 나라는 계속 흔들렸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광해군의 시대가 지나가고, 인조반정과 두 번의 호란이 왔다. 병자호란 때 그는 예순 무렵이었고, 세상을 떠난 것은 그 전쟁이 끝난 지 몇 해 뒤다. 이 시리즈 3편과 4편에서 우리가 남한산성과 무인도 죽도를 따라갔던 그 겨울을, 안동의 한 선비도 자기 자리에서 적고 있었던 셈이다.

【절 이야기】 재미있는 연구 갈래가 하나 있다. 이 일기를 근거로 안동 지역 사족들이 절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살핀 연구다. 유학자들이 절에서 글을 읽고 쉬고 승려들과 교류한 양상이 일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조선은 유학이 불교를 억눌렀다는 쪽인데, 실제 생활에서는 선비가 절에 올라가 공부하고 승려와 왕래했다. 앞 편 묵재일기에서 유학자가 손자의 장수를 빌며 굿을 한 대목과 같은 자리다. 제도의 원칙과 사람의 하루는 늘 조금씩 어긋난다.

【초서와 여러 필체】 이 일기도 초서로 쓰였다. 앞 편들에서 계속 나온 벽이다. 게다가 남아 있는 여덟 책의 필체가 여러 종류라, 후대 사람들이 다시 베껴 쓴 부분도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표제는 그냥 일록, 날의 기록이다.

이 일기가 학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가 전국의 사료를 조사하던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그때 간행되지는 못했다. 우리말 번역은 한참 뒤, 한국국학진흥원이 일기 자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2013년에 완료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도 국역이 실려 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일기 목록에 노상추일기와 나란히 놓을 수 있다.

【물러난 사람의 기록】 이 편을 왜 이 자리에 놓았는지 적어 둔다. 3부의 앞 세 편은 각각 무관, 학자, 청년의 일기였다. 노상추는 자리를 얻으려고 평생을 썼고, 황윤석은 자리와 상관없이 공부했고, 유만주는 자리를 얻지 못한 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김령은 자리를 얻고 나서 그 자리가 옳지 않다고 보고 내려온 사람이다. 조선 후기 양반이 벼슬 앞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이 네 편에 거의 다 나온다.

그리고 물러난 사람의 붓이 더 자유로웠다는 점도 있다. 조정에 있었다면 적기 어려웠을 말들, 이긴 쪽의 명분에 대한 의심,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의 실상, 시험판의 부정 같은 것이 고향의 서재에서는 적혔다. 나라의 기록이 채우지 못하는 자리를 이런 붓이 채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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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기로 읽는 조선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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