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영 — 스물한 살에 시작해 아들을 묻고 덮은 13년, 태워 달라던 일기

1775 1월 1일 · 한양 숭례문 근처

앞의 두 편은 대학자의 일기였다. 67년을 쓴 무관과 53년을 쓴 백과전서파. 이번 편은 다르다. 서울 청년 하나가 스물한 살에 일기를 시작해 13년을 쓰고, 아들을 묻은 뒤 스스로 덮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이 일기를 태워 달라고 남겼다.

쓴 사람은 유만주다.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을 서울 숭례문 근처 자기 집에서 글을 읽고 쓰며 보냈다. 일기의 제목 흠영은 그가 만든 말이다. 책 속의 어질고 훌륭한 사람들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자기 호로도 이 말을 썼다. 무엇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를 제목에 그대로 적어 놓은 셈이다.

【정월 초하루에 시작한 사람】 1775년 1월 1일, 그는 첫 장을 썼다. 새해 첫날에 일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대개 계기가 있어 붓을 들었다. 유배에서 돌아왔거나, 전쟁이 터졌거나, 피란길에 올랐거나, 무과를 준비하기 시작했거나. 유만주는 그런 사건 없이, 그냥 새해 첫날에 시작했다.

그리고 13년 동안 이어 썼다. 여러 차례 정돈해 스물네 책으로 묶었다. 한 해의 일기를 한 부로 묶고 그해의 간지를 제목으로 달았으며, 책마다 달수대로 권을 나누었다. 흘려 쓴 초고를 자기 손으로 정리한 것이다. 표제는 당시 명필로 이름난 당숙이 써 주었다. 자기 일기를 이렇게 책의 꼴로 만든 사람은 이 시리즈에서 처음이다.

【그가 적은 것】 무엇이 들어 있나. 자기가 지은 시와 문장, 읽은 책의 내용과 문장론, 중국과 조선의 글씨와 그림에 대한 논의, 조정의 소식을 전하는 조보의 내용, 집안의 대소사. 그러니까 이 일기의 중심은 사건이 아니라 읽고 생각한 것이다. 앞 편의 황윤석이 산학과 천문을 붙들었다면 유만주는 문장과 책을 붙들었다.

그는 목록 만들기를 좋아했다. 갖고 싶은 책, 가고 싶은 곳, 짓고 싶은 집과 정원을 목록으로 적어 두었다. 실제로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연구자들이 이 일기를 몽상의 기록이라 부르는 이유다. 마음속에 이상적인 공간을 계속 설계한 사람이었다.

한글이 섞여 있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집안 여성들과 평생 글을 주고받았다. 자기가 태어날 무렵 할머니가 한글로 쓴 일기를 읽으며 집안의 지난 일을 돌아보았고, 여러 연령대의 여성들과 편지를 주고받아 그 내용 일부를 한문으로 옮겨 일기에 적었다. 장모와 자주 만나 죽은 아내 이야기를 나누고, 장모가 한글로 쓴 아내의 행장을 받아다 아버지께 보인 일도 있다. 이 시리즈 3편의 병자일기가 여성이 한글로 쓴 기록이었는데, 그 한글이 사대부 집안 안에서 남녀가 소통하는 실제 수단이었다는 것이 이 일기에서 확인된다. 한문 사이에 우리말 고유어를 그대로 남겨 둔 대목도 있다. 한문으로 옮기기 어려운 말맛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과거에 붙지 못한 사람】 그의 아버지 유한준은 문장가이자 서예가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아들은 그런 집에서 태어나 책과 함께 자랐는데 과거에 붙지 못했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급제하지 못한 사람을 이미 보았다. 쇄미록의 오희문이 그랬고, 이재난고의 황윤석도 대과에는 붙지 못했다. 다만 유만주는 젊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었다.

일기에는 그 초조함이 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적고 목록을 만들면서,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의 자의식이 계속 나온다. 연구자들이 이 일기를 주변부 사대부의 자기 기록이라 부르는 것이 그래서다. 대학자의 연구 노트도 관리의 업무 일지도 아닌,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자기를 들여다본 기록이다.

집안 사정도 어두웠다. 아내는 출산 뒤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나온 죽음이다. 쇄미록의 딸 단아, 병자일기의 다섯 남매, 노상추의 아내들. 조선에서 출산은 그런 일이었다. 아내를 잃은 뒤 그에게 남은 위안은 책과 두 아들이었다.

【1787년 5월】 그해 5월, 맏아들 구환이 앓아눕고 며칠 뒤 숨을 거두었다. 유만주는 6월 폭우 속에 아들을 선산에 묻었다.

그리고 일기 쓰기를 멈췄다. 정확히는, 아들의 상이 끝나는 그해 12월 14일까지만 쓰고 그만두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죽은 아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기를 일곱 달 더 쓰고 완전히 덮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약속대로 12월 14일에 마지막 장을 썼다.

그 마지막 문장을 연구자들은 무겁게 읽는다. 자기가 평생 붙들었던 것, 목록으로 그려 온 아름다운 상상과 취향을 이제 그치겠다는 뜻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13년 동안 자기를 지탱해 온 것을 스스로 부인한 문장이다. 그는 이듬해 1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일기를 쓴 지 한 달 남짓이었고 서른넷이었다.

【태워 달라던 일기】 그는 아버지에게 이 일기를 태워 달라고 남겼다고 전한다. 아버지는 차마 태우지 못했다. 그리고 아들의 문집을 엮으면서 일기의 원문을 필사해 남겼다. 흘려 쓴 초고를 정리하는 일은 그의 벗이 두 해에 걸쳐 주관했다고 한다. 그렇게 스물다섯 책으로 편찬됐고, 그 가운데 한 책이 사라져 지금은 스물네 책이 전한다. 규장각에 있다.

이 시리즈에서 기록이 남는 방식은 계속 달랐다. 미암일기는 나라가 찾아와 실록의 빈칸을 채웠고, 부북일기는 아들이 아버지의 뒤에 자기 일기를 이어 붙였고, 고대일록은 후손의 집에서 발견됐고, 이재난고는 후손이 고향에 기탁했다. 흠영은 쓴 사람이 없애 달라고 한 것을 아버지가 남긴 경우다. 유언을 어긴 덕에 남은 기록이다.

그리고 이 일기는 오래 우리말로 읽을 수 없었다. 스물네 책 백예순한 권을 다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2015년에 한 연구자가 그 가운데 지금 읽을 만한 대목을 골라 두 권으로 옮겨 냈고, 그것이 흠영을 우리말로 소개한 첫 책이 됐다. 학계에서는 18세기 서울의 사회와 경제와 문화를 보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왜 이 일기가 남달라 보이나】 앞 편들의 일기에는 대개 어떤 역할이 있었다. 변방 근무, 피란, 의병, 관직, 학문. 흠영에는 그 역할이 없다.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책을 읽고 목록을 만들고 자기를 들여다본 13년이다. 그래서 요즘 읽으면 가장 낯설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갖고 싶은 것이 있고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의 노트처럼 읽힌다.

그가 스스로 덮은 마지막 문장이 무거운 것도 그래서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에게 남아 있던 것은 그 몽상이었는데, 아들을 묻은 뒤 그것마저 그치겠다고 적었다. 서른넷의 일기가 이렇게 끝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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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기로 읽는 조선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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