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대첩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연합부대가 청산리 일대(백운평·천수평·어랑촌 등)에서 6일간 10여 차례 교전 끝에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독립전쟁사 최대의 승전. 그러나 이 승리의 주역들은 이듬해 자유시 참변이라는 비극적 전환점을 맞는다.
왜 일어났나
봉오동에서 패한 일본은 훈춘사건을 조작해 대군을 만주로 들여보냈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은 근거지를 버리고 백두산 쪽으로 이동하다 10월 21일 청산리 백운평에서 추격군과 마주쳤다. 6일 동안 어랑촌·천수평 등 10여 차례 싸움이 이어졌고, 지형을 이용한 매복과 부대 간 연합이 승리를 만들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독립군은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일본군은 보복으로 간도의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수천 명을 죽였다(간도참변). 독립군은 러시아령으로 옮겨 갔다가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청산리는 무장투쟁의 정점으로 기억되지만, 그 대가를 치른 것은 간도의 민간인이었다. 홍범도는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쳤고 2021년 유해가 돌아왔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산리대첩
- 우리역사넷 청산리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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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개항기·일제강점기 지도(1876~1945)의 사건입니다 — 개항기·일제강점기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