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1911~1920년 약 3,500명의 독립군 간부를 길러낸 무장투쟁의 산실. 봉오동·청산리의 지휘관 다수를 배출했고, 의열단 초기 단원 13명 중 10명도 이곳 출신이었다. 1920년 1월 일본의 사주를 받은 장쭤린 군벌이 한족회 해산을 명령했고, 5월부터 중일 합동수색대가 서간도 일대를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봉오동에서 패한 일본군이 보복 작전을 앞당기자 학교 유지는 불가능해졌다. 교관과 생도들은 1920년 7월 안도현으로 이동했고, 8월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폐교 직전 지청천·김동삼이 이끈 400여 명의 졸업생 교성대는 그대로 청산리 전투에 투입됐다. 학교는 사라졌지만 그 사람들이 곧 전장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흥무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