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루트

1770~1771

과거 보러 가던 배가 류큐까지 떠내려갔다 — 스물아홉 명이 떠나 여덟 명이 돌아온 다섯 달

타임라인 (10개 지점)

  1. 향시에 붙다 — 마을이 여비를 모아 주다 (1770 · 제주)

    그때 나라는: 지방에서 향시에 붙으면 한양으로 올라가 대과를 치러야 했다. 육지 사람에게도 먼 길인데 섬 사람에게는 바다부터 건너야 하는 길이었다. 이 사람은: 제주의 장한철이 향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대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과 관에서 여비를 모아 주었다고 전한다. 섬에서 과거 보러 뭍으로 나가는 일이 한 마을의 일이었던 것이다.

  2. 조천 포구를 떠나다 — 일행 스물아홉 (1770 12월 25일 · 제주 조천)

    그때 나라는: 제주와 뭍 사이는 장삿배가 오갔고, 겨울 바다는 위험했다. 표류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12월 25일 일행 스물아홉 명이 한양으로 가는 장삿배를 타고 조천 포구를 떠났다. 그날 일기에 고래를 만난 이야기가 있다. 스물아홉 명의 얼굴빛이 노랗게 되어 배 안에 엎드린 채 고래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저마다 관세음보살을 외며 무사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3. 사흘을 떠내려가며 관측하다 (1770 12월 26일 · 제주 남쪽 바다)

    그때 나라는: 조선의 배는 계절풍과 해류를 타고 다녔다. 바람이 뒤집히면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출항한 지 얼마 안 되어 풍랑을 만나 사흘을 떠돌았다. 그런데 그는 그 사흘을 적었다. 날씨가 흐렸는지 맑았는지, 바람이 어느 쪽에서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파도의 높이와 빛깔이 어땠는지,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렀는지. 지남철로 방향을 살피고 밤에는 별을 보아 위치를 짐작했다. 표류하면서도 관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록 때문에 이 책은 해양 지리 자료로도 쓰인다.

  4. 류큐 열도의 무인도에 닿다 (1770 12월 28일 · 류큐 호산도(오키나와 북부 해역))

    그때 나라는: 류큐는 독립된 왕국이었고 조선과 직접 오가지는 않았다. 조선 사람이 그 바다를 보는 일은 표류로만 가능했다. 이 사람은: 사흘 만에 닿은 곳이 류큐 열도의 무인도였다. 기록에 호산도로 남아 있다. 정월 초에 섬에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도움이 아니라 물품을 빼앗기는 일을 겪었다. 이 책에는 류큐의 태자에 관한 전설도 함께 적혀 있다.

  5. 안남에서 일본으로 가던 상선에 구조되다 (1771 1월 2일 · 류큐 해역)

    그때 나라는: 18세기 동아시아 바다에는 여러 나라의 상선이 오갔다. 안남은 지금의 베트남이다. 조선이 육로로 연경만 오가던 시절에 바다에는 이런 왕래가 있었다. 이 사람은: 안남에서 일본으로 가던 상선을 만나 구조됐다. 그런데 배 안에서 위기가 있었다. 일행이 제주 사람이라는 사실을 두고 문제가 생겼고, 배에 타고 있던 명나라계 사람의 도움으로 풀려났다고 적혀 있다. 표류민이 어디 사람인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세계였다.

  6. 흑산도가 보이는데 다시 풍랑 (1771 1월 6일 · 흑산도 근해)

    그때 나라는: 서남해의 겨울 바다는 돌아오는 배에도 위험했다. 이 사람은: 정월 초엿새 흑산도 근처까지 왔다.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런데 다시 풍랑을 만났다. 앞서 한라산이 보이던 날에는 일행이 설문대할망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다는 대목도 있다. 유학을 공부해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배 안에서 부처와 제주의 여신을 함께 부른 사람들을 적어 놓았다.

  7. 청산도 — 스물아홉 중 스물한 명을 잃다 (1771 1월 · 전라도 청산도)

    그때 나라는: 표류선이 뭍에 닿으면 고을에서 표류민을 거두어 돌려보내는 절차가 있었다. 이 사람은: 배는 청산도에 떠밀려 닿았고, 그 과정에서 일행 스물아홉 명 가운데 스물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떠내려갈 때보다 돌아오는 길에 더 많이 죽은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여덟이었다.

  8. 강진으로 나와, 그는 한양으로 갔다 (1771 2월 · 전라도 강진)

    그때 나라는: 그해 한양에서 대과가 열렸다. 이 사람은: 생존자들은 청산도를 거쳐 강진으로 나왔고 일부는 제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장한철은 한양으로 갔다. 과거를 보러 온 길이었으니까. 스물한 명을 바다에 잃고도 시험장으로 향한 것이다.

  9. 과거장 — 그리고 낙방 (1771 2월 · 한양)

    그때 나라는: 이 시리즈 9편의 노상추가 같은 시기에 무과에 열 해 넘게 매달리고 있었다. 과거는 그런 일이었다. 이 사람은: 2월 한양에 도착해 시험을 치렀고 떨어졌다. 다섯 달의 일이 그렇게 끝났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10. 제주에서 다시 적다 — 젖어 망가진 기록을 되살리다 (1771 5월 · 제주)

    그때 나라는: 표류 기록은 나라에도 필요한 정보였다. 해류와 바람과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그해 5월 제주에서 이 기록을 정리했다. 표류하는 동안 적어 둔 것이 바닷물에 젖어 망가졌기 때문에, 섬에서 일차로 적어 둔 것을 돌아와 다시 정리한 것으로 연구자들은 본다. 그래서 오히려 그때의 상황과 마음의 변화가 자세히 남았다. 한문 필사본 한 책이 국립제주박물관에 있고 2008년 제주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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