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편에서 잠깐 본 『만주원류고』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그 말을 조금 고쳐 쓰게 됩니다.
1777년, 청나라 건륭제가 이 책을 만들라고 명했습니다. 이듬해 완성된 책의 이름은 「만주의 근원을 살핀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청나라는 만주족 소수가 한족 수억을 다스리는 나라였고, 한족 선비들 눈에 만주족은 여전히 오랑캐였습니다.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도 오래되고 뿌리 깊은 사람들」이라는 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만주 땅에서 일어난 옛 나라들을 거의 다 제 조상 쪽으로 모았습니다.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발해, 금나라는 물론, 부여와 삼한, 백제와 신라까지 부족의 목록에 올렸습니다. 1편에서 본 「한나라 때는 삼한」도 그 결과입니다. 한족 역사가들이 이 사람들을 잘못 적었다고 따지는 대목도 여럿입니다. 『후한서』가 진한 사람들이 아이의 머리를 돌로 눌러 납작하게 만든다고 적은 데 대해, 청나라 풍속으로 보면 아이를 오래 눕혀 두어 저절로 그리된 것인데 범엽이 까닭을 모르고 곡해했다고 나무라는 식입니다.
하나는 청나라의 읽기입니다. 이 땅의 옛 역사가 모두 우리 것이라는 읽기.
그런데 이 책은 이긴 쪽의 책이면서 동시에 반박하는 책이었습니다. 이천 년 동안 중국 역사책을 쓴 것은 한족이었고, 그 책들은 북쪽 사람들을 낮춰 적었습니다. 만주원류고는 그 기록에 맞서 제 목소리로 다시 쓰려던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한족의 사서도, 만주원류고도 저마다의 목적을 품은 기록입니다.
둘은 일본의 읽기입니다. 20세기 초 일본 학자들은 만주와 조선을 한 덩어리의 역사로 묶는 「만선사(滿鮮史)」를 내세웠습니다. 조선의 역사는 늘 대륙의 흐름에 끌려다녔다는 이 시각은 일본의 만주 진출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만주와 한반도를 한 줄로 잇는다는 점에서는 만주원류고와 닮았지만, 목적은 정반대였습니다.
셋은 신채호의 읽기입니다. 2편에서 본 대로 그는 만주원류고의 「숙신은 곧 주신」이라는 풀이를 가져와, 조선·숙신·주신이 같은 말이라 했습니다. 청나라가 제 뿌리를 세우려고 쓴 대목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가에게는 우리 역사의 무대를 만주까지 넓히는 근거가 됐습니다.
넷은 오늘 중국의 읽기입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동북공정」은 지금 중국 국경 안에서 일어난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보는 논리를 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그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 한 줄의 계보가 누가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기가 됐습니다.
여기에 우연처럼 겹치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만주원류고가 완성되고 여섯 해 뒤인 1784년, 조선의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고』를 썼습니다. 그 머리말에 이런 뜻의 문장이 있습니다.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짓지 않았으니, 고려가 떨치지 못했음을 알겠다.」 고려가 발해사를 써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땅과 그 역사를 남에게 내주게 됐다는 한탄입니다. 유득공은 신라와 발해를 함께 「남북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쓰는 남북국 시대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거의 같은 때에 북경에서는 황제의 학자들이 그 땅의 역사를 제 것으로 쓰고 있었고, 한양에서는 한 서얼 출신 학자가 우리가 쓰지 않은 역사를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이렇게 고쳐 볼 수 있습니다. 역사는 쓴 사람의 기록이다. 이긴 쪽이 더 많이 쓰는 것은 맞다. 그러나 쓰지 않은 쪽은 이겼어도 잃는다. 고려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역사를 쓰지 않았고, 그 빈자리는 칠백 년 뒤 다른 나라의 책이 채웠습니다.
이 시리즈가 옛 소리를 찾아 헤맨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제 글자로 남기지 못한 말은 남의 글자로만 남았습니다. 제 손으로 쓰지 않은 역사는 남의 손으로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