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션이라는 소리 — 여진은 스스로를 뭐라 불렀나

1635 · 만주

여진(女眞)은 우리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여진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자기들을 부른 소리는 「주션(jušen)」에 가까웠습니다. 여진은 그 소리를 중국 사람들이 한자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요나라 때는 임금 흥종의 이름자(眞)를 피하느라 여직(女直)이라고도 썼습니다. 몽골말의 「주르첸」, 영어의 Jurchen도 모두 같은 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 이름에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진 사람들이 청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말에서 「주션」은 점점 「종, 부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그래서 1635년 홍타이지는 앞으로 주션이라 부르지 말고 「만주(Manju)」라 하라고 명했습니다. 만주족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이때입니다. 스스로 부르던 이름이 낮은 뜻으로 바뀌자, 이름을 새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진 이전에는 누구였을까요. 중국 역사책을 따라가면 이렇게 이어집니다. 진나라 이전 옛 기록의 숙신(肅慎), 한나라에서 위·진 무렵의 읍루(挹婁), 북위 때의 물길(勿吉), 수·당 때의 말갈(靺鞨), 그리고 요·금 때의 여진, 1635년 이후의 만주.

그런데 이 줄은 한 민족이 이름만 바꿔 온 족보가 아닙니다. 중국 사서들이 「옛날 숙신의 땅」이라며 시대마다 그 땅의 사람들을 이어 붙인 것이고, 청나라가 1778년 무렵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를 펴내면서 「우리 뿌리는 숙신」이라는 공식 족보로 굳혔습니다. 이 책은 숙신이 곧 주신(珠申)의 소리가 바뀐 것이라 했고, 머리 부분에서 숙신의 이름이 한나라 때는 삼한(三韓), 위·진 때는 읍루였다고 적었다고 소개됩니다. 중국 정사에서 한나라 무렵 이 계열을 가리키는 이름은 읍루인데, 청나라의 족보는 거기에 삼한까지 끌어온 것입니다. 이 족보가 어떤 의도로 짜였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학계는 같은 지역에 살던 여러 집단에 중국이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붙였다고 봅니다. 핏줄이 한 줄로 곧게 이어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특히 말갈은 여러 부족을 뭉뚱그린 이름이어서, 속말말갈처럼 고구려 사람들과 섞여 발해를 함께 세운 무리도 있었고, 흑수말갈처럼 발해와 맞선 무리도 있었습니다. 뒷날 여진으로 이어지는 쪽은 주로 흑수말갈 계열로 봅니다.

이 편에서 붙잡아 둘 것은 하나입니다. 이름은 두 겹으로 남는다는 것. 스스로 부른 소리가 있고, 남이 그 소리를 듣고 제 글자로 적은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이름은 거의 다 두 번째 것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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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말은 어디에 남았나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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