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천 — 백마 탄 김장군, 시베리아에서 사라지다

1922 · 블라디보스토크 · 연해주

1920년대 연해주의 한인 마을에는 전설이 하나 떠돌았다. 백마를 탄 김장군이 나타나면 마적도 백군도 도망친다는 것이었다. 그 전설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이었고, 이름은 김경천이었다.

본명은 김광서. 함경도 북청 사람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기병 장교였다. 대한제국이 사라진 뒤 일본군 중위로 도쿄에 있던 그는 3·1운동 소식을 듣고 결심한다. 같은 육사 출신 지청천과 함께 군복을 벗고 압록강을 건넜다. 서른한 살, 일본군 장교의 안정된 삶을 통째로 버린 것이다. 그는 만주의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가르치다가, 무기를 구하러 연해주로 넘어갔다.

연해주는 그때 러시아 내전의 한복판이었다. 붉은 군대와 흰 군대가 싸우고, 그 틈에서 마적이 한인 마을을 약탈했다. 김경천은 한인 청년들을 모아 부대를 만들었다. 마적을 소탕하고, 일본군이 지원하는 백군과 싸웠다. 이 무렵 그는 붉은 군대 편에 섰다. 일본군과 싸우는 쪽이 그쪽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일기에는 이 시절의 전투와 추위와 굶주림이 날짜별로 적혀 있다.

전설은 이때 생겼다. 그의 이름은 한인 사회에서 신화가 됐고, 훗날 북한이 김일성 신화를 만들 때 이런 김장군 전설들이 바탕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자신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내전이 끝난 뒤 소련 시민으로 살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군사학교에서 가르쳤고, 집단농장에서 일했다. 조선으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일본이 다스리는 땅이었으니까.

그리고 1936년, 그를 받아 준 나라가 그를 잡았다. 죄목은 간첩. 증거는 없었다. 스탈린의 대숙청이 한인 사회를 덮치던 때였고, 일본과 싸운 이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일본 간첩으로 몰리기 쉬웠다. 이듬해에는 연해주의 모든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김경천은 재판 끝에 북극권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고, 1942년 그곳에서 숨졌다. 쉰넷이었다. 가족은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반세기 넘게 알지 못했다.

그의 이름이 한국에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소련이 무너지고 문서가 열리면서 백마 탄 김장군의 실체가 드러났고, 1998년에야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일본군 장교였다가 독립군이었다가 소련 군인이었다가 간첩이었다가, 마지막에 독립유공자가 된 사람 — 그 사이 그 자신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를 부르는 이름만 국경을 따라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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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계를 넘은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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