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뉴욕에서 아리랑이라는 책이 나왔다. 한 조선 청년 혁명가의 생애를 미국 여기자가 받아 적은 책이다. 책은 세계 여러 말로 번역됐고, 조선 사람의 삶을 서양 독자들이 처음으로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읽은 기록이 됐다. 그런데 그 책이 나왔을 때 주인공은 이미 죽고 없었다. 책이 나오기 3년 전, 자기가 몸담은 조직에게 처형당했다.
김산은 필명이고 본명은 장지락이다.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열다섯에 집을 나와 만주의 신흥무관학교로 갔고, 북경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혁명에 뛰어들었다. 광저우 봉기에 참가해 살아남았고, 하이루펑의 농민 소비에트에서 싸웠으며, 여러 차례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풀려났다. 서른이 되기 전에 그는 중국 혁명의 최전선을 두 번 이상 지나온 사람이었다.
1937년 옌안에서 그는 미국 기자 님 웨일즈를 만났다. 에드거 스노의 아내인 그는 이 조선 청년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스무 번 넘게 인터뷰했다. 김산은 자기 인생을 통째로 말했다. 조선의 유년, 3·1운동의 충격, 만주와 중국의 전장, 사랑과 배신과 고문과 신념. 그 말들이 아리랑이 됐다.
이듬해 그는 옌안에서 처형됐다. 죄목은 일본 간첩이자 트로츠키파. 증거는 없었다. 여러 번 체포됐다가 풀려난 이력이 의심을 샀다. 적에게 잡혔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적과 내통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명령을 내린 것은 당의 보안 책임자 캉성이었고, 그의 손에 죽은 혐의 없는 사람은 김산 말고도 많았다. 서른셋이었다.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다.
그 뒤 45년 동안 그는 중국에서 반역자였고,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였으며, 북한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이름이었다. 님 웨일즈의 책만이 그가 살았다는 증거였다.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그의 처형이 잘못이었다며 명예를 회복시켰고, 2005년 한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김경천이 소련에서 겪은 일을 김산은 중국에서 겪었다. 편들었던 쪽에게 죽고, 죽은 지 반세기 뒤에 양쪽에서 복권되는 것 — 4부의 인물들이 되풀이하는 결말이다.
아리랑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웨일즈는 적었다. 자기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이겼다고. 이 시리즈에서 자기 인생을 자기 입으로 정리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리고 그 정리를 받아 적어 준 사람이 조선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닌 미국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