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남쪽 언덕에 기념공원이 하나 있다. 몽골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함께 세운 곳으로, 모시는 사람은 한국인 의사 이태준이다. 몽골이 한 개인을 위해 공원을 만들어 준 외국인은 그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이태준은 경남 함안 사람으로 세브란스 의학교를 나온 초기 서양 의사다. 졸업 무렵 독립운동 사건에 얽혀 중국으로 망명했고, 몇 해 뒤 몽골로 들어갔다. 1914년, 울란바토르가 아직 우르가라 불리던 시절이다. 그는 거기서 병원을 열었다. 이름은 동의의국.
당시 몽골은 성병이 온 나라에 퍼져 있었다. 라마교의 승려가 인구의 상당수였고 위생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이태준은 이 병을 치료했다. 몽골 사람들은 그를 신의라 불렀고, 소문이 궁정에 닿아 그는 몽골의 마지막 군주 복드 칸의 주치의가 됐다. 몽골 국왕이 외국인 의사에게 훈장을 내린 것도 이때다. 조선 청년이 초원의 나라에서 왕의 의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병원은 병원만이 아니었다. 울란바토르는 상하이의 임시정부와 러시아를 잇는 길목이었고, 이태준의 병원은 그 길의 중간 기지였다. 독립운동 자금이 그 병원을 거쳐 옮겨졌다. 의열단의 김원봉이 그를 통해 헝가리 출신 폭탄 기술자를 소개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신의의 진료실 뒤에 독립운동의 연락소가 있었던 것이다.
1921년 초, 러시아 백군의 잔당인 운게른 부대가 울란바토르를 점령했다. 이 부대는 유대인과 볼셰비키와 그 협력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태준도 그들에게 잡혀 살해됐다. 서른여덟. 그가 돌보던 몽골 사람들이 시신을 거두어 묻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그 뒤 80년 가까이 잊혔다. 몽골은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그를 기념할 수 없었고, 한국은 그가 몽골에서 무엇을 했는지 몰랐다. 1990년대 두 나라가 수교한 뒤에야 기록이 맞춰졌고, 2001년 기념공원이 섰다. 이 시리즈의 문법으로 보면 그는 나라 없는 조선인이 남의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기억된 드문 경우다. 그를 기억해 준 쪽이 고국이 아니라 초원의 나라였다는 것 — 이정기를 중국이 기억하지 않고 김교각을 중국이 기억하는 것처럼, 기억은 국경을 따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