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폭파 의거 —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1945년 8월 24일 · 경성 부민관

해방을 3주 앞둔 1945년 7월 24일, 친일 정치깡패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은 경성 부민관에서 조선총독과 조선군사령관, 국내외 친일파들을 모아 태평양전쟁 총동원을 선동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열었다. 앞서 3월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해뒀던 유만수·조문기·강윤국은 이 대회를 저지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유만수가 수색변전소 작업장에서 몰래 빼돌린 다이너마이트로 사제 시한폭탄 2개를 제작했고, 대회 전날 밤 부민관 담을 넘어 잠입해 무대 뒤에서 화장실로 통하는 복도에 폭탄을 설치했다. 애초 박춘금을 직접 처단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강제 동원된 조선인 청중까지 다칠 위험이 있어 인명 피해를 줄이면서 대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쪽으로 계획을 정했다.\\n\\n7월 24일 저녁, 박춘금이 연단에서 연설을 시작한 직후 폭탄 2개가 연이어 터지며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대의당 관계자 1명이 폭사,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예정보다 일찍 터지는 바람에 목표했던 요인 처단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친일 관제 대회를 완전히 무산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조선총독부는 비상경계에 들어가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고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3주 뒤인 8월 15일 광복을 맞을 때까지 세 사람의 정체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부민관 폭파 의거는 일제강점기 최후의 순간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꼽힌다. 사건이 벌어진 부민관 건물은 광복 후 국회의사당과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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