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분할 점령

1945년 8월 11일 · 38도선

일본의 항복이 임박하자 미국은 1945년 8월 11일 38도선을 경계로 한 미소 분할점령안을 작성해 사흘 뒤 일반명령 제1호로 발표했다. 소련군은 8월 말부터 평양 등 38선 이북에, 미군은 9월 초 인천에 상륙해 38선 이남에 각각 진주했다. 본래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한 단순한 군사적 경계선이었던 38선은,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정치적 분할선으로 굳어져갔다. 한반도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대국의 전후 처리 셈법으로 그어진 이 선이, 80년 가까운 분단의 시작점이 됐다.

왜 일어났나

1945년 8월 소련이 참전해 한반도 북부로 밀고 내려오자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차지할 것을 걱정했다. 8월 10일 밤 미 육군부의 젊은 장교들이 30분 만에 지도 위 38도선을 골랐고, 소련이 받아들였다. 일본군 무장 해제를 위한 임시 경계선이었지 나라를 나누려는 뜻은 아니었다고 당사자들은 말했다.

무엇이 달라졌나

9월 미군이 남쪽에, 8월 말 소련군이 북쪽에 들어와 각각 군정을 폈다. 임시 경계는 신탁통치 논쟁과 미소공동위원회 결렬을 거치며 굳어졌고, 1948년 남북에 따로 정부가 서면서 국경이 되었다. 1950년 전쟁이 이 선에서 시작되었고 1953년 휴전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분단의 시작을 어디로 볼지를 두고 여러 견해가 있지만, 선이 그어진 날은 이날이다.

세계는 같은 시기

참고 자료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이 사건은 근현대 지도(1945~1993)의 사건입니다 — 근현대 사건 연표 · 지도 · 이야기 · 기록 ·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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