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도쿄와 요코하마를 무너뜨린 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자경단과 군경이 조선인을 찾아 죽였고 희생자는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공식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9월은 두 번의 상륙과 두 개의 정부가 선 달이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내렸고 1950년 9월 15일에는 맥아더가 같은 바다로 들어왔다. 9월 6일 여운형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했고 9월 9일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섰다. 그 사이에 강우규가 남대문역에서 폭탄을 던진 9월 2일이 있고, 관동대지진 속에서 조선인이 학살당한 9월 1일이 있다.
산남의진 — 영천에서 일어나 경북 동해안을 누빈 의병
1905년 을사늑약 뒤 고종의 밀지를 받은 정환직·정용기 부자가 영천에서 일으킨 의병부대 산남의진. 유생과 농민, 포수, 해산 군인이 함께했다. 이한구는 결성 때 중군장으로 핵심 병력을 지휘했고 대장 정용기가 붙잡히자 부대를 이끌었으며, 손영각은 참모장으로 작전과 운영을 맡았다. 두 분은 1907년 가을 포항 죽장 입암전투에서 함께 전사했다. 최산두는 지도부가 잇따라 순국한 뒤 흩어진 부대에 들어가 군자금과 무기·식량을 모았다. 국가보훈부가 2026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공훈전자사료관 ›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김종기는 해병대 제2대대장으로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해 9월 20일 한강을 건너 서울 수복에 나서 중앙청 확보에 공을 세웠다. 쇼 대위는 한국에서 태어난 선교사의 아들로 인천상륙작전의 정보장교였고 9월 22일 서울 녹번동에서 전사했다. 국가보훈부 2026년 9월 이달의 6·25전쟁영웅.
근거: 국가보훈부 보도자료 2026-08-31
도쿄와 요코하마를 무너뜨린 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자경단과 군경이 조선인을 찾아 죽였고 희생자는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공식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새벽 4시 45분 독일 전함이 단치히를 포격하고 육군이 국경을 넘었다.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했다. 6년 뒤 이 전쟁이 끝나면서 조선이 해방된다.
예순다섯의 강우규가 새로 부임하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총독은 다치지 않았으나 3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강우규는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서울역 앞에 그의 동상이 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음력 7월 16일). 30년 뒤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도쿄만의 미국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 대표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8월 15일의 방송이 말이었다면 이날은 문서였다. 같은 날 호찌민이 하노이에서 베트남 독립을 선언했다.
8년 전쟁 끝에 영국이 열세 식민지의 독립을 문서로 인정했다. 미시시피강까지가 미국 땅이 됐다.
폴란드 침공 이틀 뒤. 유럽 전쟁이 됐다.
1909년 9월 4일 베이징에서 일본과 청이 간도협약을 맺었다. 일본은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등 만주의 이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했다.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쥔 일본이 우리 땅 문제를 우리 없이 흥정한 것이다. 이미 두만강을 건너가 살던 조선인 수만 명은 하루아침에 남의 나라 백성이 됐고, 1902년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보내 지켜 온 대한제국의 간도 행정도 끝났다. 그 뒤 간도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고 1920년 청산리·봉오동 전투가 이 땅에서 벌어진다.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스당에서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 항복하자 파리 시민이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 공화국이 70년을 간다.
가봉 랑바레네에서 아흔 살로 죽었다. 의사이자 오르간 연주자이자 신학자로 아프리카에서 반세기를 보냈다.
미국 포츠머스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강화했다. 조약 2조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군사·경제상 우월한 이익을 갖는다고 적었다. 두 달 뒤 을사늑약이 온다.
남궁억·장지연 등이 국한문 혼용으로 냈다. 1905년 11월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이 신문에 실린다.
콜카타에서 여든일곱으로 죽었다. 같은 주에 다이애나의 장례가 있어 세계가 두 장례를 함께 치렀다.
미군 상륙 이틀 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서울에서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좌우를 아우르려 이승만을 주석에 앉혔지만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다.
배 다섯 척 270명이 떠나 배 한 척 18명이 돌아왔다.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죽었고 엘카노가 남은 배를 끌고 왔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몸으로 증명됐다.
본명 김정식.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두세 살 무렵 아버지가 철도를 놓던 일본인들에게 맞아 정신을 놓았고, 오산학교에서 스승 김억을 만나 시인이 되었다. 열아홉에 등단해 스물셋에 시집 「진달래꽃」을 냈다. 유학은 관동대지진으로 접었고 고향에 돌아와 연 신문 지국은 문을 닫았다. 시인으로 산 시간은 십 년이 채 되지 않고 1934년 12월 서른둘에 세상을 떠났다. 그 짧은 시간에 남긴 시가 백 년을 건너와 아직 우리 입에 붙어 있다.
아틀라스에서 더 보기 ›미군 상륙 전날 발표됐다. 북위 38도 이남을 미군이 점령하고 모든 행정권을 갖는다는 내용. 조선인민공화국도 임시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평북 구성에서 태어났다(음력 8월 6일). 「진달래꽃」 「초혼」 「산유화」의 시인. 서른둘에 세상을 떠났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 45년을 다스리며 스페인 무적함대를 꺾고 셰익스피어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 중장의 미 24군단이 인천에 내려 이튿날 서울로 들어왔다. 9월 9일 총독부에서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해방은 됐으나 나라는 아직 없었다.
연합국 48개국과 일본이 서명했다. 한국은 서명국에서 빠졌고, 조약에 독도가 명시되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 일본이 독도를 문제 삼는 근거로 쓰인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음력 7월 25일). 열두 살에 왕이 되어 44년을 재위했고, 대한제국 황제가 됐다가 강제 퇴위당했다.
보헤미아의 작곡가. 「신세계 교향곡」을 미국에서 썼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비서장으로 임시정부의 살림을 27년 지킨 분이다. 광복 소식을 충칭에서 들었지만 귀국 준비를 하다 9월 9일 예순넷에 쓰러졌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임시정부 요인 가운데 한 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유해는 1948년 김구가 모셔 와 효창공원 임정 요인 묘역에 잠들어 있다.
아틀라스에서 더 보기 ›임시정부 국무령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고 1940년대 의정원을 이끌었다. 광복 뒤 귀국해 이듬해 9월 9일 눈을 감았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대한민국 정부가 선 지 25일 뒤 평양에서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정부가 섰다. 한반도에 두 국가가 마주 서게 됐다.
여든둘. 그의 죽음으로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의 시대가 열린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여든둘에 집을 나와 시골 역에서 죽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기초하고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을 썼다. 1950년 전쟁 때 납북돼 1958년 9월 10일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정신이 이 분의 글에서 왔다.
"시시"로 불린 황후가 호숫가를 걷다 무정부주의자의 줄칼에 찔렸다. 남편 프란츠 요제프는 그 뒤 18년을 더 다스렸다.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자 독일이 옛 동맹의 수도를 점령했다. 무솔리니는 독일 특수부대에 구출돼 북부에 괴뢰정부를 세운다.
상하이·한성·연해주 세 임시정부가 상하이로 합쳐졌다.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이날 공포된 임시헌법이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다.
납치된 여객기 네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쳤다. 2,977명이 죽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이 여기서 시작된다.
피노체트의 군대가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아옌데는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하고 궁 안에서 죽었다. 17년 군사독재가 시작됐다.
의열단원 김익상이 전기 수리공으로 꾸미고 총독부 청사 2층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 하나가 터졌고 그는 유유히 걸어 나와 베이징으로 갔다. 이듬해 상하이에서 다나카 대장을 저격하다 잡혔다.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상록수」 「그날이 오면」. 3·1운동으로 옥살이를 했고 서른다섯에 죽었다.
두 달 포위 끝에 폴란드 왕 얀 소비에스키의 기병이 오스만군을 무너뜨렸다. 오스만의 유럽 진출이 여기서 꺾였다. 크루아상이 이 승리에서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휴스턴 라이스 대학.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10년 안에 달에 간다고 했다. 7년 뒤 갔다.
백악관 잔디밭에서 라빈과 아라파트가 악수했다. 팔레스타인 자치가 시작됐으나 라빈은 2년 뒤 암살되고 평화는 오지 않았다.
개를 찾던 프랑스 소년 넷이 구멍으로 들어가 2만 년 전 그림을 봤다. 소·말·사슴 600여 점.
텅 빈 도시에 들어갔고 그날 밤 불이 났다. 한 달을 기다리다 퇴각했고 60만 대군 가운데 돌아온 이는 몇만이었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채 라벤나에서 죽었다. 「신곡」을 완성한 직후였다. 피렌체는 지금도 그의 유해를 돌려받지 못했다.
맥아더의 유엔군이 조수 간만 차가 큰 인천에 상륙했다. 낙동강까지 밀렸던 전선이 하루 만에 뒤집혔다. 13일 뒤 서울을 되찾는다.
유대인은 독일 시민이 아니며 독일인과 결혼할 수 없다고 법으로 정했다. 홀로코스트로 가는 문서의 첫 장.
추리소설 66편.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가.
연해주에서 태어난 한인 여성으로 한인사회당(1918) 창당을 이끌었다. 러시아 내전 때 백군에게 붙잡혀 1918년 9월 16일 하바롭스크에서 서른셋에 총살됐다. 조선 13도를 뜻하는 열세 걸음을 걷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 경계를 넘은 사람들 루트에 이 분의 길이 있다.
아틀라스에서 더 보기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의 작가. 3·1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했고, 1936년 「상록수」 출간 준비 중 장티푸스로 서른다섯에 눈을 감았다. 손기정의 베를린 우승 소식을 듣고 쓴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가 마지막 글이다.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
조선의 첫 사제가 새남터에서 스물다섯에 참수됐다. 마카오에서 신학을 배우고 돌아온 지 1년이었다. 1984년 성인이 됐다.
송진우·김성수 등 우익이 조선인민공화국에 맞서 세운 정당. 미군정의 여당 노릇을 하며 해방 정국의 한 축이 됐다.
평남 평원. 소를 그린 화가. 전쟁 중 가족과 헤어져 마흔에 무연고자로 죽었다.
청교도 102명이 플리머스를 떠났다. 두 달 뒤 신대륙에 닿아 미국의 시작 신화가 됐다.
1940년 9월 17일 충칭 자링빈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 한국광복군이 총사령 지청천, 참모장 이범석으로 창설됐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지 33년 만에 다시 선 나라의 군대.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합류했고 1945년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다 광복을 맞았다. 국군의 뿌리를 여기서 찾는다.
160개국이 참가했다. 12년 만에 동서 양 진영이 함께 나온 올림픽. 전쟁과 독재를 겪은 나라가 세계에 처음 선 날.
통영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죽었다. 동백림 사건으로 끌려와 옥살이를 하고 다시는 고국에 오지 못했다.
필라델피아에서 넉 달 논쟁 끝에 서명했다. "우리 국민은"으로 시작하는, 지금도 쓰이는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
독일이 서쪽에서 들어온 지 16일 뒤. 독소 비밀협정대로 폴란드를 나눠 가졌다.
노량진과 제물포 33km. 시속 20km로 1시간 40분. 걸어서 하루였던 길이 두 시간이 됐다.
일본 관동군이 스스로 철도를 폭파하고 중국 탓을 하며 만주를 점령했다. 이듬해 만주국을 세웠다. 15년 전쟁의 시작이고, 조선은 그 병참기지가 됐다.
북한 잠수함이 강릉 해안에 좌초했다. 49일 소탕 작전으로 군인·민간인 18명이 죽었다.
현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여성이 국가 단위 선거에서 투표한 첫 나라. 영국은 25년, 미국은 27년 뒤였다.
규모 8.0. 1만 명 넘게 죽었다. 정부가 손을 못 쓰자 시민들이 맨손으로 구조했고, 이 경험이 멕시코 시민사회를 바꿨다.
1907년 전국 의병을 모아 13도창의군 총대장이 되어 서울진공작전을 이끌었다. 아버지 부음을 듣고 물러난 뒤 1909년 붙잡혀 9월 20일 서대문형무소(경성감옥)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에 다가와 포격을 주고받고 영종도에 상륙해 약탈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이듬해 강화도조약(1876)을 강요했다. 개항의 문이 이렇게 열렸다.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양세봉과 함께 싸웠고, 광복군 제3지대장으로 안후이성 푸양에서 학병 탈출자들을 받아 훈련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분단 40년 만에 서울과 평양을 서로 오갔다. 남쪽 35가족, 북쪽 30가족. 나흘이었다.
조선혁명군 총사령 양세봉이 밀정의 유인에 걸려 총을 맞고 죽었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 독립운동가로 기리는 드문 인물.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스페인 산루카르에서 배 다섯 척으로 떠났다. 3년 뒤 한 척이 돌아온다.
교황령 로마를 점령해 반도가 하나가 됐다. 교황은 바티칸에 스스로를 가두고 59년 뒤에야 화해한다.
국민공회 첫날 왕정을 없앴다. 이듬해 1월 루이 16세의 목이 떨어진다.
「타임머신」 「우주전쟁」 「투명인간」. 공상과학의 아버지.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난 미국인. 노르망디에 참전했고 하버드 박사과정 중 6·25 소식에 자원해 인천상륙작전의 정보장교로 맥아더를 도왔다. 서울 수복 작전 중 9월 22일 녹번동에서 스물여덟에 전사했다. 국가보훈부 2026년 9월 이달의 6·25전쟁영웅.
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벌법을 만들었다. 반민특위가 682건을 다뤘으나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1년 만에 무너졌고 실형은 거의 없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출발점.
앤티텀 전투 닷새 뒤. 이듬해 1월 1일부터 반란 주의 노예는 자유라고 선언했다.
후세인의 이라크가 이란을 쳤다. 8년 동안 백만 명이 죽었다.
제본소 견습공 출신의 물리학자. 전기 모터와 발전기의 원리를 찾았다.
서울. 「날개」 「오감도」. 건축기사였고 스물일곱에 도쿄에서 죽었다.
계산으로 먼저 찾은 행성. 천왕성 궤도의 흔들림에서 위치를 예측했고, 베를린 천문대가 그 자리에서 찾았다.
나치를 피해 간 런던에서 여든셋으로 죽었다. 턱 암으로 16년을 앓았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가고시마에서 자결했다. 마지막 사무라이의 마지막 반란.
혼다 소이치로가 자전거에 엔진을 단 것으로 시작했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해 동제사를 만들고 임시정부 수립의 밑그림을 그렸다. 1922년 임시정부 내분에 절망해 단식하다 9월 25일 마흔셋에 눈을 감았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유해는 1993년 국립묘지로 돌아왔다.
파나마 지협을 넘어 산 위에서 바다를 봤다. 유럽인이 태평양을 본 첫날.
미국 남부의 소설가. 노벨문학상.
소련 조기경보 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미국 미사일 발사 경보를 오작동으로 판단하고 보고하지 않았다. 실제로 오작동이었다. 한 사람이 세계를 구했다.
라디오로 들은 사람은 닉슨이 이겼다 했고 TV로 본 사람은 케네디가 이겼다 했다. 정치가 화면의 시대로 들어갔다.
「황무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 세 쪽짜리 논문에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는 식이 담겼다.
영국 스톡턴-달링턴. 스티븐슨의 기관차가 승객을 실었다.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며 신민회 인사 수백 명을 잡아들인 조작 사건의 1심 판결이 이날 나와 105명이 유죄를 받았다. 윤치호·양기탁·이승훈 등. 고문으로 두 명이 죽었고, 안창호 계열의 국내 조직 신민회가 이 사건으로 사라졌다.
인천 상륙 13일 뒤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되찾았다. 중앙청에 태극기가 다시 올랐다. 이틀 뒤 국군은 38선을 넘는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열여덟에 죽었다. 아우내 장터 만세 시위로 잡힌 지 1년 반. 옥중에서도 만세를 불러 고문을 받았다.
근대 지도에서 이 사건 보기 ›휴가에서 돌아와 보니 곰팡이가 세균을 죽여 놓았다. 항생제 시대의 시작.
저온살균과 광견병 백신.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
맥아더가 이승만에게 서울을 돌려주는 식을 중앙청에서 열었다. 천장에서 유리가 떨어지는 폐허 속에서.
영국·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체코의 주데텐을 넘겼다.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의 평화"라 했고 11개월 뒤 전쟁이 났다.
「돈키호테」.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을 잃고 알제리에서 5년 포로였다.
1909년 12월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재판에서 "나는 이완용 한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판 도적을 죽이려 했다"고 말했다. 경술국치 한 달 뒤인 1910년 9월 30일 스물넷에 교수형.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역사가.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니 정신이 살아 있으면 형체는 다시 산다고 썼다.
스물넷. 캘리포니아 도로에서 포르셰를 몰다 죽었다. 영화 세 편으로 영원히 젊다.
29일 밤 회담이 30일 새벽 서명으로 끝났다.
이달의 역사는 한국사·인물·세계사 세 갈래로 날마다 몇 가지를 고른다. 생몰일은 양력이며 음력 기록은 양력으로 바꿔 적었다. 사건 카드가 있는 것은 그 시대 지도로 이어진다. 빠진 날과 잘못은 광장에 알려 주시면 고친다.